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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16] 권규미의 "너는 원래 새였단다"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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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원래 새였단다

 

권규미

 

꿈속을 날아보렴

반짝이는 세계의

 

말랑한 어둑발 미끄러진 순간에

소년은 고작 열네 살, 작고 작은 아가였다

 

맹물을 마실 때도

근원을 생각하며

 

자기 삶의 출처를 밤마다 필사하는

먼 나라 네 별자리처럼 그렇게 부신 너는

 

고 작디작은 심장으로

연둣빛 팔을 뻗어

 

꽃송이 하나씩을 신화처럼 건넨 그날

노을은 천둥보다도 더 높이 타오르고

 

마음껏 날아보렴

너는 원래 새였단다

 

마침내 다다른 별나라의 푸른 창공

아가야, 처음부터 네겐 날개가 빛났단다

 

*지난 13일 달성군 다사읍 저수지에서 얼음을 지치던 아이 여섯 명이 물속에 빠지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아이가 친구 네 명을 구하고 남은 한 명을 구하려다 익사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누가 너를 놓쳤을까』(가히, 2025) 

너는 원래 새였단다 _ 권규미 시인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네 명의 친구를 구하고 가다

 

  언뜻 보면 시 같지만 네 수로 된 시조입니다. 종장의 첫 음수를 세 글자로 못 박은 시조의 규정을 잘 지켜 소년은, 먼 나라, 노을은, 아가야로 했습니다. 이 시조를 읽고 한동안 머리가 텅 비어, 넋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네 아이는 앞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까요? 워낙 어릴 때 일이라 크면 기억에서 거의 다 사라져 버릴까요? 그날만 되면 납골당 유골함 앞에 꽃을 들고 찾아갈까요? 친구들을 살리고 죽은 이 아이를 화장하여 뼛가루를 그 저수지에 뿌렸을까요? 열네 살 짜리, 작고 작은 아이의 우정이라고 해야 할지 의협심이라고 해야 할지 기가 막힙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의인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시인은 이 소년을 새로 탄생시켜 날개를 달아주기로 했습니다. 먼 나라 너의 별자리처럼 눈이 부실 정도이니 죽어서 영원히 살아가게 했습니다. 너는 원래 새였으니 마음껏 하늘을 날아보라고 합니다. “고 작디작은 심장으로/ 연둣빛 팔을 뻗어” “마침내 다다른 별나라의 푸른 창공이 된 아이야, 나는 이렇게밖에 너를 위로할 수가 없구나, 하고 시조를 한 편 지었습니다. 시인의 지극한 애도와 비원(悲願)에 눈물짓습니다. 아이야, 백세시대라는데 너는 네 명을 살렸으니 400년을 살 수 있어. 별나라에서 푸른 창공을 나는 새가 되어.

 

  [권규미 시인]

 

  경북 경주 출생. 1994년 《문학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2013년 월간 《유심》에 「희고 맑은 물소리의 뼈」 외 4편으로 재등단. 시집 『참, 우연한』『각시푸른저녁나방』 등이 있으며 경주문학상,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누가 너를 놓쳤을까』는 첫 시조집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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