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16] 정호승의 "요양병원"
요양병원
정호승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이라는
당신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어요
오늘도 요양병원에 계신 당신이
제 전화를 받지 못하셔도
당신을 잊지 않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므로
전화 못 받으셔도 괜찮습니다
언제나 그리운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니까요
저는 밥 잘 먹고 다닙니다
굶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부디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창밖의 날카로운 어둠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아침마다 당신이 모이를 주시던 새들이 굶으면
당신도 굶으실 것 같아
제가 열심히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어요
새들이 모이를 쪼아 먹을 때마다
고요히 혼자 웃으시던 당신의 웃음처럼
새들도 웃으면서 당신을 보고 싶어합니다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군요
새들이 나뭇가지를 떨치고 밤의 골목으로 사라졌어요
사람은 죽고 나서도 사랑하는 것이라고
사람은 죽어서도 사랑해야 살 수 있다고
제 손을 꼭 잡고 하신 당신의 말씀
오늘도 잊지 않고 있어요
―『편의점에서 잠깐』(창비, 2025)

[해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로, 인간의 유한성과 겸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문구다. 정호승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 말이 바로 ‘메멘토 모리’였다. 너도 언젠가 죽을 거야. 잘난 체하지 마. 남 원망 너무 하지 마. 착하게 살아. 스스로 네 몸을 돌보지 못할 때가 올 거야. 그럼 요양병원에 가야 할 거야.
정호승 시인은 사람의 존재 이유를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도 요양병원에 계신 “당신을 잊지 않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므로/ 전화 못 받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라는 한 사람이 누군가의 아낌, 보고 싶음, 그리움, 생각의 대상이면 사랑받는 것이다. 그럼 그 사람의 생은 가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는 것, 사랑받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있을까.
당신은 뜰에 혹은 마당에 찾아오는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일이 일과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 새를 안 굶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얘기를 했을 것이다. 생명체를 돌본다는 것도 참 보람 있는 일이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내가 누구에게 먹이를 준다는 것도 사랑의 실천이다. 엄마가 아기에게 젖이나 젖병을 물리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듯이.
당신은 내게 “사람은 죽고 나서도 사랑하는 것이라고/ 사람은 죽어서도 사랑해야 살 수 있다고” 말했으니 성자인가 천사인가. 아마도 시인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요양병원에 계시다 숨을 거두신 분이니. 그분은 사람들한테 많이 베풀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너도 사랑받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너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그럼 사랑받을 것이라고.
[정호승 시인]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시선집, 동시집, 영한시집, 어른을 위한 동화집, 산문집 다수를 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언뜻 감상적인 대중 시집과 차별성이 없어 보이지만, 정호승 시인은 ‘슬픔’을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으로 승인하고, 그 운명을 ‘사랑’으로 위안하고 견디며 그 안에서 ‘희망’을 일구어내는 시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구축하였다. ‘슬픔’ 속에서 ‘희망’의 원리를 일구려던 시인의 시학이 마침내 다다른 ‘희생을 통한 사랑의 완성’은, 윤리적인 완성으로서의 ‘사랑’의 시학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