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 유타카, 인간을 ‘인간’으로 인식하는 경계 묻다
인간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그것을 ‘인간’이라고 판단하는가.
얼굴도, 이름도, 구체적인 신원도 알 수 없는 형상을 마주하면서도 우리는 몇 개의 선과 윤곽, 자세와 움직임만으로 그것을 인간이라고 인식한다. 일본 현대미술가 하시모토 유타카(Yutaka Hashimoto)는 바로 이 익숙하지만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인식의 순간을 회화와 드로잉으로 탐구한다.

도쿄 텐노즈의 YOD Gallery는 오는 2026년 10월 10일부터 24일까지 하시모토 유타카 개인전 《Study for Null #008》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인간’이라는 형상을 움직임과 시간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리다. 특히 사진사에서 인간과 동물의 움직임을 연속사진으로 기록한 선구자로 평가받는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의 사진 연구를 출발점으로 제작된 12점의 종이 작품이 전시의 중심을 이룬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Study for Null: Quoted from Eadweard Muybridge's “The Human Figure in Motion” #024-5》는 170×121.5cm 크기의 종이 위에 아크릴, 색연필, 흑연을 사용한 작품이다.
움직임이 겹쳐질 때 인간의 형상은 어디까지 남는가
하시모토는 머이브리지의 연속사진에 등장하는 인간의 움직임에서 윤곽선을 추출하고, 서로 다른 시간대의 형상을 한 화면에 겹쳐 놓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신체의 윤곽이 중첩되면서 각각의 독립적인 인간 형상은 부분적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사라짐 속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관람객에게 보이는 것은 분명 인간의 흔적이지만 특정한 한 사람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몸은 움직임 속에서 분해되고 다시 결합되며, 구체적인 인물과 익명의 신체 사이를 오간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질문한다.
“우리가 누군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왜 그들을 인간이라고 인식하는가.”
하시모토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개념이 관람자의 시각과 기억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추적하는 데 있다. 몇 개의 선과 형태의 배열, 윤곽선과 자세만으로도 관람자는 그것을 인간으로 받아들인다. 작가는 우리가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무엇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 되묻는다.
‘인간은 천에 싸인 살덩어리’라는 오래된 질문
이번 전시는 작가가 과거에 다뤘던 ‘불확정적인 신체’에 대한 탐구와도 연결된다.
하시모토는 한때 **“인간은 천에 싸인 살덩어리”**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인간과 다른 동물의 외형적 차이를 걷어낸 뒤 남는 존재에 관심을 가졌다. 한 겹의 피부 아래에서 인간과 동물이 결국 유사한 육체적 물질로 구성돼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외형과 분류가 사라진 뒤에도 생명체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시각적인 형태로 나타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초기 작업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다소 불확정적인 신체 이미지로 나타났다. 이후 한동안 작가는 이 표현 방식에서 거리를 두었지만 이번 《Study for Null #008》에서는 윤곽과 움직임, 시간의 중첩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간다.
이제 ‘살덩어리’는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대신 시간에 따라 변하는 신체의 윤곽이 서로 포개지면서 고정된 인간의 모습이 흔들리고, 그 사이에서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경계 역시 불확실해진다.
‘모른다’는 상태에서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
《Study for Null》 연작에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자의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공통의 어떤 상태를 공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작품 앞에서 같은 즐거움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는 없다. 경험도 기억도 감정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시모토는 우리가 잠시나마 ‘좋다’와 ‘싫다’ 사이에 놓인 ‘잘 모르겠다’는 상태를 공유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에게 ‘Null’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공백이나 무(無)를 뜻하지 않는다. 또한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 통합하거나 각각의 차이를 제거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것들이 우열이나 옳고 그름으로 분류되지 않은 채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상태에 가깝다. 따라서 《Study for Null》에 등장하는 작품 자체가 ‘Null’인 것은 아니다. 작품은 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일종의 ‘Study’, 즉 연구이자 실험이다.
익숙하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몸
하시모토의 화면에는 인간처럼 보이면서도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는 형상이 등장한다.
겹쳐진 선과 색, 축적된 정보의 층 사이에서 몸은 분명하게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어떤 순간에는 인간의 몸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단순한 선의 집합이나 물질적인 덩어리로 읽힌다.
바로 이러한 불안정성이 하시모토의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작품에 대한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관람객은 오히려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불러와 화면의 형상을 해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미지가 어떤 의미로 확정되기 직전의 순간.
인간인지 아닌지, 익숙한 것인지 낯선 것인지 완전히 규정되지 않은 순간.
하시모토는 바로 그 불확정적인 인식의 상태를 화면 안에 붙잡아두고자 한다.
종이·선·움직임·시간으로 확장되는 ‘Study for Null’
이번 텐노즈 전시에서는 종이 위 작품뿐 아니라 비디오를 비롯한 새로운 형식의 실험도 함께 소개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도쿄 오모테산도의 YOD TOKYO에서 열리는 《Study for Null #007》과 연결된다.
오모테산도 전시는 2026년 10월 9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되며 캔버스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반면 텐노즈의 《Study for Null #008》은 종이와 선, 움직임, 시간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인간의 형상을 탐구한다. 서로 다른 장소와 재료, 표현 방법을 사용하지만 두 전시는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공유한다.
‘우리는 무엇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를 인간이라고 인식하는가.’
캔버스와 종이, 정지된 이미지와 시간성을 가진 움직임 사이를 오가며 하시모토는 하나의 질문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다. 두 전시를 함께 관람한다면 작가가 ‘Null’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서로 다른 매체와 표현 방식으로 확장하고 있는지 보다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작가가 말하는 ‘Study for Null’
하시모토는 이번 작업에 대해 종이 위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형상이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탐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인간과 다른 동물을 한 겹의 피부 아래 놓인 유사한 육체적 존재로 바라보며 불확정적인 형태의 신체를 제작했다면, 이번에는 머이브리지의 연속사진에서 가져온 인간의 윤곽을 겹치는 방법으로 과거의 문제의식에 다시 접근한다.
신체의 윤곽과 움직임이 겹쳐질 때 기존의 형태는 흐려지고 새로운 형상이 발생한다.
그 변화의 과정이 바로 우리가 ‘인간’을 보고 인식할 때 무엇에 의존하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이 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또 다른 작품들 역시 인물의 윤곽과 색채, 중첩의 관계를 다양하게 시험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하시모토의 작품 앞에서 관람객이 만나는 것은 완성된 하나의 답이 아니다.
선과 선 사이, 몸과 덩어리 사이,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는 이미지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을 바라보는 순간 관람객 역시 작가가 던진 질문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인간이라고 말하는가.
전시 개요
전시명: 하시모토 유타카 개인전 《Study for Null #008》
작가: 하시모토 유타카(Yutaka Hashimoto)
전시기간: 2026년 10월 10일(토) ~ 10월 24일(토)
장소: YOD Gallery, Tokyo Tennoz
주소: TERRADA ART COMPLEX II 2F, 1-32-8 Higashi-Shinagawa, Shinagawa-ku, Tokyo 140-0002, Japan
관람시간: 11:30~18:30
휴관: 일요일·월요일
특별 개관:
10월 11일(일), 10월 12일(월·일본 공휴일)
MEET YOUR ART FESTIVAL 2026 특별 운영시간:
10월 10일(토) 11:00~20:00
10월 11일(일) 11:00~20:00
10월 12일(월·공휴일) 11:00~18:00
문의: +81(0)3-6674-5086
이메일: [email protected]
주최·전시: YOD Gallery
연계 전시
전시명: 《Study for Null #007》
작가: 하시모토 유타카
기간: 2026년 10월 9일(금) ~ 10월 21일(수)
장소: YOD TOKYO, Omotesando, Tokyo
주요 구성: 캔버스 작품을 중심으로 한 ‘Study for Null’ 연작
YOD Gallery는 2008년 오사카에서 출발해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가치와 표현을 국내외에 소개해 왔으며, 2020년 YOD Editions, 2022년 도쿄의 YOD TOKYO 등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도쿄 텐노즈의 YOD Gallery 역시 전통적인 표현에서 실험적인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미술관을 지닌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갤러리 홈페이지: YOD Galle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