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07] 박윤우의 " ‘비빔’의 국제어 등록 심사 공동회의"
‘비빔’의 국제어 등록 심사 공동회의
박윤우
한국 대표는
‘비빔’은 조리법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재료가 뒤섞이며 고유성을 잃지 않고
하나의 맛으로 완성되는 민주적 맛의 구조다
그러자 프랑스 대표는
그건 그냥 샐러드라고 반박했고
멕시코 대표는
자신들의 부리또와 유사성을 주장했다
미국 대표는
결국은 드레싱 싸움 아니냐며
회의의 본질을 흔들었다
그때 한국 대표가 참기름 뚜껑을 열었다
회의장이 갑자기 침묵했다
스리랑카 대표가 눈을 감았고
그리스 대표는 자신도 모르게 밥을 찾았다
그날 ‘비빔’은
조리와 화합 사이의 감정적 과정으로
국제어 예비 목록에 등재되었다
단,
발음은 “비빔” 그대로 의역은 금지되었다
―『감정 물리학_E404』(시와반시, 2025)

[해설] 비빔밥을 좋아하세요?
비빔밥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서로 다른 재료가 뒤섞이며 고유성을 잃지 않고/ 하나의 맛으로 완성되는 민주적 맛의 구조”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이다. 후자는 밥과 반찬의 이 맛도 저 맛도 다 사라지고 없어서 ‘맛없는’ 음식이 되고 말기 때문에 비벼 먹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비빔밥을 좋아하는데 집의 아이는 어릴 때부터 밥과 반찬을 절대로 비벼 먹지 않아서 내 자식인데도 ‘참 묘한 녀석이로고’ 생각하고 있다.
‘비빔’을 놓고 국제어로 등록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국제회의가 열렸다. 물론 박윤우 시인이 상상해본 국제어 등록 심사 공동회의였다. 프랑스 대표는 그건 그냥 샐러드라고 반박했고 멕시코 대표는 부리또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나. 미국 대표가 역시 삐딱하다. 드레싱(식품에 치는 소스 따위의 양념) 싸움이 아니냐며 핀잔을 준다. 한국 대표가 참기름병 뚜껑을 열고 한 숟갈 받아서 비빔밥 위에다 붓고 비비자 회의석상에 고소한 냄새가 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비빔’은 “조리와 화합 사이의 감정적 과정으로/ 국제어 예비 목록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머지않아 국제어로 등록될 것이다. 특히 발음이 ‘비빔’으로만 되어 저희들 나라의 발음법으로 고쳐 쓰면 안 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예컨대 비밤이나 비붐이나 비빙 같은 것으로 발음을 바꿔 쓰면 안 되는 것이다. 비빔밥은 비벼서 먹는 것이고 ‘비비다’의 명사형이 비빔이다. bibim! 발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 나라 사정이고 우리는 어쨌거나 비행기를 타도 비빔밥을 먹는다.
[박윤우 시인]
2018년 《시와반시》로 등단했다. 시집 『저 달, 발꿈치가 없다』가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