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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95] 김영탁의 "예쁜 치매 환자" 외 1편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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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치매 환자1

 

김영탁

 

하루해가 길다던가 텅텅 비는 세포 군락

환자만 모른다는 치매라는 하늘길

 

남몰래

지팡이 짚고

홀로 가는 눈먼 길

 

밥이 오면 밥을 먹고 밤이 되면 잠을 자고

하루종일 허송세월 무슨 생각 저리 깊어

쓴약도

마다않으니

그를 일러

예쁜 치매

 

상사想思

 

종일을 헤매어도 닿지 않는 둘의 정리(情理)

먼데 산만 그저 좋아 시간 놓고 바라보기

 

그대의 사랑 담은 손

한 번인들

주었나

 

세월이 약이지만 구할 능력 바이없어

신경세포 죽어가는 인사불성 밤샘 불면

치매란

고질 중병을

저 혼자만

앓는다

 

—『꿈의 자리』(명성서림, 2025)  

예쁜 치매 환자 _ 김영탁 시인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누군들 치매 환자가 되고 싶으랴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의 70세 이상 노인 인구 중 몇 %가 치매 환자일까? 꽤 높은 수치일 것이다. 주변의 어르신네 중 상당수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계신데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나 또한 찾아온 자식을 몰라보고 존댓말을 하는 상황이 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적당한 나이에 잠자다가 스르르 숨이 멎는 지복이 나에게 찾아올 확률은 0.1%도 안 될 것이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57학번 김영탁의 시조집은 상편 이승 곁/치매환자와 살기40편의 시조가, 하편 저승 곁/치매환자로 살기46편의 시조가 실려 있다. 1부에서 1편을, 2부에서 1편을 골라보았다. 이 많은 시조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면서, 자신도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것을 느끼면서 쓴 것이리라. 이 시조집보다 더 슬픈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치매 환자는 자신의 넋이 나가버린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밥이 오면 밥을 먹고 밤이 되면 잠을 잔다. 시인은 환자의 일과를 하루종일 허송세월이라고 표현했다. 다행히 쓴약도 마다하지 않으니 예쁜 치매라고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은 매일 가슴으로 울 것이다. 내 기억 속에는 아내가 있는데 아내의 기억 속에는 내가 없을 때,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괴로울까.

 

  신경세포도 때가 되면 죽어가게 마련이다. 아내는 밥을 먹고 잠을 자도 인사불성의 상태요 나도 불면의 밤에 시조를 쓰면서 새벽을 맞이한다. 오랜 간병에 지쳤다. 나 또한 이제는 준 치매 환자가 되었다. 내일모레면 90이니 나 또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다. 하지만 살아 있으니 살아야 하는 것이다. 『효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가 생각난다. 우리의 몸뚱이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인 만큼 그것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의 첫걸음이라는 뜻이다. 선배님의 『꿈의 자리』에 실린 치매 환자 잠든 모습/ 조선 천하 편했는데/ 앞니 3개 뽑고 나니/ 다른 모습 되었구료/ 벗님아/ 부모님 유산/ 이렇듯이/ 중하네”(「여보! 여보!)를 읽고 끝내 울고 만다. 시인은 아내여라고 부르지 않고 벗님아라고 부르고 있다.

 

  [김영탁 시인]

 

  동흥상고를 거쳐 영동고등학교 교감으로 교직을 마쳤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초대총무와 3대 회장을 했다. 강남문인협회 회장과 중앙대 문창과 총동문회 부회장, 한국농악보존협회 이사를 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으로 있다. 장편소설 『연리목에 핀 무궁화』, 『삼작 노리개』 외에 다수의 수필집과 시집을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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