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53] 문무학의 "세종의 처방전"
세종의 처방전
- 가운뎃소리 ㅚ
문무학
외국 말 잘 못하면 얼굴 빨개지면서
우리말은 틀리고도 낯 붉히지 않는다면
국적이 그 어디냐고 물어봐야 하느니라
세종의 처방전
- 첫소리 ㄹ
ㄹ 초성 우리말이 없어서 그런 거냐
사랑 두고 삶을 두고 러브니 라이프니
사랑이 영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더냐
세종의 처방전
- 끝소리 ᆶ
옳은 일과 그른 일은 큰일에만 있지 않다
우리 말글 홀대하고 남의 말글 자주 쓰면
어떻게 옳은 일 한다 손뼉 칠 수 있겠느냐
세종의 처방전
- 가운뎃소리 ㅗ
곱고 곱고 고와서 꽃이라 지었거늘
‘꼬츤’은 어디가고 ‘꼬슨’은 웬말인가
바르게 불러주어야 짙은 향기 품느니라
세종의 처방전
- 가운뎃소리 ㅣ
이겨야만 산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지고도 살 수 있고 비겨도 살 수 있다
이겨도 질 때가 있고 져도 이길 때 있다
- 《세종대왕 처방전》(책만드는집, 2025)

[해설]
문무학 시인의 우리말 사랑
「세종의 처방전」 연작시조 예순여덟 편은 한글 첫소리 열아홉, 가운뎃소리 스물하나, 끝소리 스물여덟, 모두 해서 예순여덟 편이 되었는데 그중 다섯 편을 골라보았다. 문무학 시인은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여 만들어낸 우리 문자 한글의 자모를 소재로 하여 시조를 써 우리를 꾸짖고 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외국어를, 특히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꾸지람을 듣는다. 부모님은 대학에도 못 간다, 취직도 못한다고 생각해 학원에 보내면서 영어 공부를 하라고 몰아붙인다. 아이의 국어 실력이 낮은 데 대해서는 아무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인 글을 써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학생 자신이 문장이 되지 않는 글을 써도, 어색한 문장을 써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학교에 가고 취직을 한다. 시인은 그의 국적이 어디냐고 물어봐야 한단다.
우리가 평소에 외래어를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가. 시인은 “사랑이 영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더냐” 하면서 꾸짖는다. 문예창작학과 학생들도 외래어 제목을 아무 거리낌 없이 쓰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낱말이 생활어이기 때문이다. “우리 말글 홀대하고 남의 말글 자주 쓰면/ 어떻게 옳은 일 한다 손뼉 칠 수 있겠느냐” 하고 외치는데, 서울시 공무원들이 만들어낸 국적 없는 용어의 사례를 몇 년 전에 찾아본 적이 있다.
서울시 에코마일리지 에너지 게임ㆍ커넥티드 드라이빙 서비스ㆍ서울시 에너지 정보 플랫폼 해커톤 참여자 모집ㆍ서울로 미디어캔버스 애니메이션 공모ㆍ 우리 동네 키움 포털ㆍ서울형 뉴딜 일자리ㆍ휴먼시티 디자인 어워드……. 부서명도 찬란(?)하였다. 그새 사라진 것도 있고 남아 있는 것도 몇 개 보인다. 국가브랜드위원회ㆍ다산콜센터ㆍ한국콘텐츠진흥위원회ㆍ문화콘텐츠산업실ㆍ게임콘텐츠산업과ㆍ디지털콘텐츠과ㆍ영상콘텐츠과ㆍ디자인공간문화과ㆍ미디어정책국ㆍ미디어정책과ㆍ홍보콘텐츠기획과ㆍ뉴미디어홍보과……. 지난 몇 년 동안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보았던 희망 플러스 통장ㆍ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ㆍ클린 재정ㆍ서울 비전 체계ㆍ시민 패트롤ㆍ서울 사랑 커뮤니티ㆍ서울리뉴얼ㆍ비전 갤러리ㆍ그린 트러스트ㆍ하이서울 리포트ㆍ서울메트로 모니터ㆍ시니어 패스ㆍ하이서울 페스티발ㆍ천만상상 오아시스ㆍ서비스 매뉴얼ㆍ비전 서울 핵심 프로젝트ㆍ희망 드림 프로젝트ㆍ시민행복 업그레이드ㆍ클린 운영ㆍ서울형 데이케어 센터 등도 한글 무시, 영어 사랑의 산물이다.
시인은 우리말을 잘못 쓴 예로 ‘꼬츤’과 ‘꼬슨’을 예로 들었다. 학생들이 종종 잘못 쓰는 말 중 ‘해지다’를 ‘헤지다’로 쓰는 것과 ‘웬일’을 ‘왠일’로 쓰는 것, ‘객쩍다’를 ‘객적다’를 쓰는 것 등이 떠오른다. 방송가에서도 잘못 쓰는 우리말이 많다. 마지막으로 예로 든 시조는 우리말로 쓴 멋진 가르침이기에 옮겨보았다. 우리네 학교 교육이 지나치게 서열 세우기, 경쟁 시키기, 성적 올리기에 집중함으로써 인성 키우기나 도덕성 기르기 같은 것에 소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문무학 시인을 다음에 뵈면 큰절을 올리리라.
[문무학 시인]
1949년 경북 고령 출생으로 대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문학박사). 1982년 《월간문학》 시조로, 1988년 《시조문학》 문학평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가을 거문고』『달과 늪』『풀을 읽다』『낱말』『가나다라마바사』, 시선집 『벙어리뻐꾸기』 등을 출간하였다. 현대시조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영남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