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시조 3 ] 풍경 _ 변현상

풍경 風磬
변현상
끓는 마음 식혀볼까
홀로 오른 뒷산 암자
쉼 없는 소슬바람에 조잘조잘 재잘재잘
아뿔사
집사람 입을
누가 저기 매달았나
- 변현상 시조집 "툭"

바람에 매달린 입, 웃음에 걸린 풍경
류안 시인
"끓는 마음 식혀볼까.” 홀로 뒷산 암자에 오른 화자의 첫마디는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마음속 격랑을 잠재우려는 자발적 거리두기다. 그런데 고요를 기대한 그 암자에서 마주한 것은 쉼 없이 속삭이는 소슬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 실려온 듯한, 집사람의 입.
“아뿔사!” 이 짧은 탄식은 감정의 전환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바람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웬걸—집사람의 잔소리처럼 들린다. 마지막 행 “누가 저기 매달았나”는 시조의 백미다. 입을 바람에 매달았다는 표현은 환유와 의인법이 절묘하게 교차하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화자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관계의 흔적.
바람은 그 흔적을 되살리는 자연의 메신저다.
이 시조는 제목 그대로 ‘풍경’을 다룬다. 하지만 그 풍경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내면의 풍경이다. “조잘조잘, 재잘재잘”이라는 의성어는 바람의 소리이면서 동시에 관계의 잔향이다. 짧은 시조 형식 안에 이토록 복합적인 감정과 이미지가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현대 시조의 정서적 깊이를 잘 보여준다.
현대시조는 이렇듯 일상생활의 서정과 감성을 담아야 한다. 복잡하고 비유적인 정서를 쉬운 시어와 익숙한 분위기로 풀어내는 것—바로 그것이 현대시조의 방향이다. 변현상의 「풍경」은 그 방향을 정확히 가리키는 나침반 같은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