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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순선 유빈문화재단 이사장, 앙데팡당 정신으로 K-ART의 새 생태계를 열다

임만택 전문 기자
입력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무대’를 만들다 앙데팡당의 ‘무심사·무차별’ 정신에서 K-ART 세계화까지 청년작가 700·국제미술교육·ESG 예술·글로벌 교류로 확장되는 새로운 미술 생태계

예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새로운 시대는 언제나 기존의 질서에 질문을 던진 사람들에 의해 시작됐다.

 

누가 예술가를 선택하는가. 누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그리고 이름 없는 젊은 작가에게도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140여 년 전 프랑스의 예술가들이 내놓은 답이 ‘앙데팡당(Indépendants)’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는 이 오래된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새로운 시대의 K-ART 생태계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재단법인 유빈문화재단 이순선 이사장이 있다.

재단법인 유빈문화재단 이순선 이사장

유빈문화재단은 앙데팡당KOREA 공식 라이선스 보유 기관으로, ‘무심사·무차별’이라는 앙데팡당의 예술 정신을 토대로 국제미술교육, 청년작가 육성, 국내외 전시, 문화예술 네트워크 등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는 ‘TOTAL-ART 생태계’를 추진하고 있다. 재단은 이를 통해 K-ART의 세계화와 예술인의 권익 보호를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순선 이사장은 재단 홈페이지 인사말에서도 “무심사·무차별의 예술 정신을 한국 땅에 뿌리내리고 K-ART의 글로벌 확산과 예술인 권익 보호에 앞장서겠다”며, 국제미술교육과 청년작가 프로젝트, 미술관·갤러리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방향을 밝히고 있다.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단순히 전시를 많이 개최하는 문화재단이 아니다.

 

작가가 발굴되고, 교육받고, 전시하고, 관객과 만나며, 나아가 국내외 시장과 연결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다시 말해 작품 한 점을 전시장 벽에 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앙데팡당, 제도 밖 예술가들에게 문을 열다

 

앙데팡당의 역사는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중심이었던 관학적 살롱 제도에 반발한 예술가들은 기존 심사 체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새로운 전시 시스템을 모색했다. 1884년 시작된 살롱 데 앙데팡당(Salon des Artistes Indépendants)은 심사위원이나 기존 아카데미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작가에게 전시의 문을 열어주는 새로운 미술운동의 상징이 됐다.

 

유빈문화재단 홈페이지는 앙데팡당의 출발을 조르주 쇠라, 폴 시냐크, 오딜롱 르동 등의 움직임과 연결해 소개하고 있으며 이후 세잔, 마티스, 반 고흐, 샤갈, 뭉크, 달리, 자코메티 등 근현대미술사의 주요 작가들이 앙데팡당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설명한다.

 

앙데팡당의 핵심은 단순하다.

 

작가의 학벌이나 소속, 유명세보다 작품을 세상과 만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바로 이 정신이 이순선 이사장이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앙데팡당KOREA의 출발점이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도 앙데팡당KOREA가 “장르의 탈피, 도전 정신, 새로운 시대정신”을 지향하며 프랑스 앙데팡당의 미술사적 의미를 한국 미술 환경에 맞게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K-ART가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앙데팡당을 과거의 유명 미술운동으로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오늘의 한국 작가들이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다시 만들어가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앙데팡당KOREA, 8년의 시간을 넘어 국제예술제로

 

2026년 앙데팡당KOREA는 8주년을 맞는다.

‘2026 INDEPENDENT 앙데팡당KOREA & 남북코리아 국제예술제’ 포스터

올해 ‘2026 INDEPENDENT 앙데팡당KOREA & 남북코리아 국제예술제’는 오는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피카디리국제미술관 앙데팡당 영등포센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참가 대상은 국내외 작가이며 회화, 한국화, 서양화, 수채화뿐 아니라 조각, 설치, 공연 등 장르와 형식의 제한을 두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개방성은 앙데팡당의 역사적 정신과 맞닿아 있다.

 

미술계에는 늘 제도와 시장이 존재한다. 그것은 작품의 수준을 높이고 미술시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제도에는 진입장벽이 생긴다. 젊은 작가나 경력이 짧은 작가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작품을 보여줄 기회를 얻는 일일 수도 있다.

 

앙데팡당KOREA가 갖는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유명 작가를 중심으로 완성된 전시가 아니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 새로운 장르를 실험하는 작가, 기존 미술계의 문법 밖에서 작업해 온 작가에게도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순선 이사장은 이러한 개방성이 결국 한국 미술의 다양성을 키우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청년작가 700’, 전시를 넘어 작가의 미래를 설계하다

 

유빈문화재단이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업 가운데 하나가 ‘청년작가 700 프로젝트’다.

‘청년작가 700 전시전 포스터

2026년 10월 28일부터 2027년 8월 28일까지 약 10개월 동안 피카디리국제미술관 영등포센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청년작가 700 전시전’은 청년작가들의 예술적 도전을 지원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재단은 이를 K-ART를 넘어 세계 청년작가들의 새로운 등용문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청년작가 지원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일회성 상장이나 행사 참여 경력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과 관객이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고도 전시할 공간을 찾지 못한다면 창작활동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따라서 청년작가 700 프로젝트가 실제로 장기간의 전시 기회와 작가 네트워크, 작품 유통, 교육까지 연결된다면 국내 청년미술 생태계에서 의미 있는 실험이 될 수 있다.

 

최근 공개된 사업 계획에서도 유빈문화재단과 협력기관은 영등포를 청년작가 중심의 새로운 문화예술 거점으로 조성하고, 미술을 전시 영역에만 한정하지 않고 문화상품과 콘텐츠 산업 등 다양한 산업과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기회’라는 이순선 이사장의 생각이 공간과 사업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전시에서 교육으로… 국제미술교육 체계 구축

 

유빈문화재단의 또 다른 축은 교육이다.

 

재단은 ISO/IEC 17024 국제미술교육자격과 연계한 교육·인증과 앙데팡당 아카데미 운영을 추진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는 국제미술자격인증과정과 프로젝트 참여를 위한 필수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재단이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미술인의 활동 영역을 넓히려는 데 있다. 작가가 작품만 제작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교육, 전시기획, 국제교류 등 여러 영역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유빈문화재단은 창작·교육·전시를 각각 분리된 사업으로 보기보다 서로 연결된 구조로 바라보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이를 ‘TOTAL-ART 생태계’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ESG와 예술의 만남

 

이순선 이사장이 추진하는 사업은 전통적인 미술전시의 범위를 넘어 사회적 주제로도 확장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ESG 국제미술대상’이다.

 ‘ESG 국제미술대상' 포스터

유빈문화재단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의 가치를 미술로 해석하고 작가·학생·산업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 예술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2026년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예정된 오픈기념전시회를 시작으로 ESG 국제미술대상, 학생미술대상, 산업디자인대상 등의 프로그램이 추진된다.

 

특히 환경과 생태를 다루는 작품뿐 아니라 업사이클·에코아트, 학생과 청년작가의 교육, 공익미술과 도시경관, 산업디자인까지 연결하려는 것이 특징이다. 예술을 미술관 안에만 존재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도시, 산업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는 수단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예술의 공공성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ESG라는 동시대의 언어로 다시 풀어가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예술가들이 제주에서 만나는 2027 국제 프로젝트

 

유빈문화재단의 활동은 국내 전시장에 머물지 않는다.

 

2027년 봄에는 제주에서 ‘국제관광미술문학투어’를 준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미술 작가들이 제주 자연 속에서 만나 미술로 소통하고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얻는 국제 관광·예술 프로젝트다. 재단은 이를 미술과 문학, 관광, 휴양을 결합하는 예술가 교류 프로그램으로 기획하고 있다.

 

이 사업은 이순선 이사장이 그동안 강조해온 국제교류의 방향과도 연결된다. 한국 작가를 해외로 보내는 것만이 국제화가 아니다. 해외 작가들이 한국을 찾아오게 하고, 서로 다른 국가의 작가들이 한국에서 만나 작품과 생각을 교류하며 또 다른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라는 공간은 자연과 관광, 문화예술을 연결하는 국제 문화교류 플랫폼으로서 가능성을 갖는다.

 

피카디리국제미술관에서 영등포·제주까지

 

유빈문화재단 사업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공간이다.

 

재단은 피카디리국제미술관을 비롯해 영등포센터와 제주센터 등 여러 거점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직영 Center & Gallery 체계를 별도의 주요 사업 영역으로 두고 있다.

 

이순선 이사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술관을 단순히 그림을 걸어놓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고 문화와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바라봐 왔다. 그는 2024년 인터뷰에서도 피카디리빌딩이 미술관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과 귀금속, 공예, 디자인 등이 공존하는 복합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지역 미술문화의 저변을 확대하고 작가와 컬렉터 사이의 신뢰를 넓혀가겠다는 방향을 밝힌 바 있다.

 

결국 전시공간, 교육, 작가 발굴, 국내외 교류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다.

 

미술이 살아 있으려면 작가만 있어서는 안 된다.

 

작품을 보여줄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이 있어야 하며, 작가와 관객을 연결하는 기획자가 있어야 한다. 다음 세대의 작가를 키우는 교육도 필요하다. 유빈문화재단이 추진하는 TOTAL-ART 생태계는 바로 이러한 연결을 지향한다.

 

심사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앙데팡당 정신을 이야기할 때 ‘무심사’라는 표현은 자칫 작품의 수준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앙데팡당의 역사에서 무심사는 작품에 대한 비평을 거부한다는 의미라기보다 예술가에게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먼저 열어준다는 철학에 가깝다.

 

작품의 평가는 전시장 문 앞에서 몇 명의 심사위원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관객과 만나고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순선 이사장이 이 정신을 오늘날 한국에서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새로운 미술은 언제나 낯설다.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렵고, 시장에서 즉시 평가받지 못하며, 때로는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낯선 시도를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면 새로운 미술은 등장하기 어렵다.

 

앙데팡당KOREA의 역할은 바로 그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

 

K-ART가 세계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

 

최근 한국의 대중문화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됐다.

 

K-POP, 영화, 드라마, 웹툰에 이어 한국 현대미술 역시 국제 미술시장에서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몇몇 유명 작가의 해외 진출만으로 K-ART의 세계화를 완성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젊은 작가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작품을 발표하고, 해외 작가들과 교류하며, 국제적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

 

이순선 이사장이 앙데팡당KOREA와 유빈문화재단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것도 결국 이러한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앙데팡당KOREA 국제예술제, 청년작가 700 프로젝트, ISO 국제미술교육, ESG 국제미술대상, 피카디리국제미술관과 각 지역 센터, 국제관광미술문학투어는 각각 다른 사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방향으로 모인다.

 

작가를 발굴하고,
작가에게 공간을 열어주고,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고,
국내외 작가를 연결하고,
예술과 사회·산업의 접점을 넓히는 일이다.

 

‘예술가가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세상.’

 

140여 년 전 파리의 젊은 예술가들이 꿈꾸었던 앙데팡당의 정신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이순선 이사장은 그 정신을 한국에서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K-ART의 언어로 다시 만들려 하고 있다. 앙데팡당은 완성된 예술가를 위한 전시가 아니라 어쩌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예술가를 위한 무대여야 한다. 

 

이름보다 작품이 먼저이고, 경력보다 도전이 먼저이며, 제도보다 창작의 자유가 먼저인 공간. 이순선 이사장과 유빈문화재단이 추진하는 여러 사업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는 시간이 평가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보여줄 첫 번째 문이다.

그 문을 더 넓게 열어주는 것.

 

그것이 앙데팡당의 시작이었고, 오늘의 앙데팡당KOREA가 이어가려는 정신이기도 하다.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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