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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 송경동의 "한 시절 잘 살았다"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 송경동의 "한 시절 잘 살았다"

이승하 시인
입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25]

한 시절 잘 살았다

 

송경동

 

나는 내 시에

푸르른 자연에 대한 찬미와 예찬이 빠져 있음을

한탄하지 않는다

 

나는 내 시에

부드러운 사랑에 대한 비탄과 환희가 빠져 있음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 시에

저 드넓은 우주에 대한 경배와 경이로움이 빠져 있음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 시에

빛나는 전망과 역사에 대한 확고한 낙관이 반영되지 못했음을

그닥 반성하지 않는다

 

가령 뜨거운 화덕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령 뙤약볕과 추위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령 착취와 차별과 폭력과 모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한 시절 인연이 그들 곁이었으므로

그들의 비천하고 비좁은 이야기로 내 시가 가득 찼음을

후회하지 않는다

 

한 시절 인연이

충분히 고귀하고 행복한 세상과 절연하고

고통만이 전부인 세상과 교통하는 일이었으므로​

 

그 절규와 아우성으로부터

내 시가 몇 발쯤 비켜서 있지 못했음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아시아, 2023)에서 

"가령 뜨거운 화덕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령 뙤약볕과 추위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령 착취와 차별과 폭력과 모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한 시절 인연이 그들 곁이었으므로
그들의 비천하고 비좁은 이야기로 내 시가 가득 찼음을
후회하지 않는다"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몸으로 시를 쓰고 있는 이

 

  지식인의 한계는 말은 그럴듯하게 하는데 그 말이 탁상공론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나온 내가 과연 지식인이기는 한가?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떳떳함보다는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쓴 시도 신통치 않거니와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한 적이 별로 없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실천의 장에 나선 적도 없다.

 

  송경동의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한탄하고, 아쉬워하고, 억울해하고, 반성하고, 후회한다. 그는 단식투쟁을 하고, 일인시위를 하고, 잡혀가고, 뚜드려맞고……. 나는 80년대에 대학에 다녔다. 대학에 다닐 때는 역사와 민중과 사회와 상황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이가 졸업 이후 현실과 타협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송경동은 우직하게, 환갑이 다 돼가는 지금도 이상과 현실을 분리하지 않는다. 글을 통해 실천하기도 하지만 몸으로, 온몸으로 시를 쓰고 있다. ‘작가회의’의 새 사무총장이 되었다고 한다. 송경동은 지금 이 시대에 하등의 부끄러움 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시인이다. 그래서 존경스럽다. 좌냐 우냐 하는 진영논리를 펴는 사람들 중에는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를 읽어보시라. 이 나라, 지금 구한말처럼 혼란스럽다. 송경동의 시를 읽으면서 지식인의 책무에 대해 다시 한번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송경동 시인 ]

 

  전남 보성 출생.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와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활동시작했다.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꿈꾸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등의 시집을 냈다. 천상병문학상, 신동엽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백호임제문학상 등 수상.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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