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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이사라의 "많이 아픈 당신에게"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이사라의 "많이 아픈 당신에게"

이승하 시인
입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81]

 많이 아픈 당신에게

 

이사라

 

모든 날들이 기적이었어요

일상은 일상다웠어요

 

해 뜨고 지고

달 뜨고 지는

그 사이에서

잠깐이라도 행복했어요

 

못 만날 수 있었던

우리가 서럽게 만난 것도

이렇게 서로를 떠나는 것도

 

하늘이 구름을 품은 것도

모든 것들이 기적이었어요

 

밖이 따스해요

봄볕인가 싶어요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듯

가는 길이 기적이기를

 

—『더 헐렁하게 사랑하든지』(도서출판 강, 2025)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듯
가는 길이 기적이기를" _이사라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모든 생명체는 기적이다

 

  이 세상에 안 아픈 사람은 없다. 마음이 아프거나 몸이 아프거나. 몸과 마음이 다 아프거나. 부와 명성, ‘권력과 영광’(The Power and the Glory,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제목) 등을 다 갖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있지만 그런 사람은 사실상 지구상에 한 명도 없다.

 

  많이 아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 격려, 사랑 같은 것일 텐데 이런 낱말이 시에 나오지 않는다. 시는 모든 날이 기적이었어요라는 말로 시작된다. 나와 당신이 지금 지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내가 살아 있고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고, “못 만날 수 있었던/우리가 서럽게 만난 것도기적이지만 이렇게 서로를 떠나는 것도기적이다.

 

  만나면 반드시 이별한다는 것을 한자로는 회자정리(會者定離) 혹은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가 뜨는 것도 기적이 아닌가. 내가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도, 저녁노을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하늘이 구름을 품은 것도기적이다. 내가 살아서 이사라 시인의 시를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기적이다.

 

  많이 아픈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일반병실에? 중환자실에? 요양원에? 요양병원에? 정신병동에? 호스피스 병동에? 그런데 당신이 지금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 당신에게 가는 길이 기적이기를 시인은 소망하고 있다. 내가 깊이 병든 몸이라서 당신에게 갈 수 없다면? 당신만 아픈 것이 아니라 나도 아프고 사실은 우리가 다 아프다. 아파할 수 있다는 것도 실은 기적이다. 촌각을 아끼자. 당신이 지금 살아 있으니까. 뭇 생명체를 귀하게 여기자. 내가 지금 살아 있으니까.

 

  [이사라 시인]

 

  1981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 『숲속에서 묻는다』 『시간이 지나간 시간』 『가족박물관』 『훗날 훗사람』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한국문예창작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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