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 책다락 82] 칼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책소개
과학과 민주주의에 대한 칼 세이건의 뜨거운 옹호 마녀와 외계인, 도사와 법사가 출몰하고 반과학과 미신, 비합리주의와 반지성주의가 횡행하는 시대 흔들리는 촛불, 과학에 대한 칼 세이건의 마지막 성찰
칼 세이건 생전 최후의 저작, 완전 개역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선정 과학 기술 도서상 수상작
2022년 세계 기초 과학의 해 기념 출간!
2022년 5월 미국 의회에서 50여 년 만에 미확인 비행 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 UFO)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미국 국방부 차관과 해군 정보국의 부국장이 참석한 이 청문회에서 미군이 발견한 미확인 공중 현상(unidentified aerial phenomena, UAP. 미군 당국이 UFO 대신 사용하는 용어)이 2004년 이후 400건 발견되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현상들이 지구가 아닌 다른 곳, 즉 외계에서 기원한 사건이라는 물질적 증거는 단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다고도 보고했다. 전문가들은 UAP 또는 UFO 목격 사례 급증이 드론의 상업화와 연관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2021년 6월 갤럽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41퍼센트가 UFO가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이라고 믿는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8월 조사보다 8퍼센트 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실제로 외계인 납치가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 미국인 중에는 지구인 중 1억 명 이상이 외계인에게 납치된 적이 있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외계인 납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도 상당수의 미국인이 바이러스 유행이 빌 게이츠 같은 특정 자본가 또는 권력자의 음모이며, 백신 역시 접종자의 정신을 조작하기 위한 특수 물질이 들어 있다고 믿고 백신 접종을 거부했다.
한국에서도 창조론자 단체의 민원으로 생물 교과서에서 진화 관련 설명을 일부 삭제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고,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운동처럼 자연 치유를 내건 유사 과학이 유행하기도 했다. 왜 우리는 과학이 아니라 이런 유사 과학, 미신, 반지성주의를 믿는 것일까? 근거도 없고 효력도 없는 주장과 낭설이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암흑 시대라고도 불렸던 서구의 중세에는 고대의 악령이 마녀로 되살아났고, 현대에는 그 악령이 외계인으로 변신해 과학의 촛불이 미치지 않는 그림자 속에서 출몰한다.

●Synopsis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첨단 기술을 누리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유사 과학, 음모론, 미신, 그리고 정치·사회적 거짓 선동에 너무나 쉽게 휘둘립니다. 중세 시대에 악령과 마녀사냥이 대중을 지배했다면, 현대 사회에는 UFO 납치 설화, 점성술, 대체의학, 음모론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악령'들이 출몰하고 있습니다.
칼 세이건은 이 책을 통해 과학을 단순한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적 사고의 도구"이자 어둠을 밝히는 "촛불"로 정의합니다.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
미국의 천문학자, 과학저술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 중 한 명으로, 20세기 후반 대중 사회에서 천문학 붐을 일으킨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평생 과학 서적만 30권 이상 저술했으며, 그중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하다. 한편 천체물리학과 천문학의 대가로 알려진 명성과 달리 《에덴의 용》 같은 저서에서는 인류학이나 생물학을 다루기도 했다.
1934년 11월 9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민온 유대인이었다.
4살때 부모님이 데려간 뉴욕 엑스포의 '미래의 미국' 코너에 깊은 인상을 받고 과학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13살에 교내에서 과학동아리를 만들어 화학에 대한 설명을 하여 학생들을 이해시킬 정도로 똑똑하고 설명을 잘 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16세에 대학을 입학하게 되는데 당시에는 조기 입학에 대한 규정이나 법률이 미비한 상태였고 조기 대입이 가능한 시카고 대학에 입학하여 대학생활을 보낸다. 어린시절에는 우주보단 생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학석사 시절에는 자유전공, 물리학을 전공하였고 졸업논문도 생명학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러다 15세에 대학에 입학한 또 다른 천재 과학자 린 마걸리스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으나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에는 프레드 휘플박사의 눈에 띄어 하버드에 교수로 가게 되었으나 이름이 알려지고 방송활동 등으로 바깥활동이 잦아진 칼 세이건을 못마땅하게 여긴 건지 종신교수 채용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이때 코넬 대학교에서 바로 칼 세이건을 스카웃하여 평생 동안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코넬 대학교 천문학 및 우주과학과의 데이비드 덩컨 석좌교수로 재직했으며, NASA에서 마리너, 파이오니어, 보이저, 바이킹, 갈릴레오, 패스파인더 등등 온갖 우주 탐사선 계획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2번째 3번째 부인을 만나게 되고 3번째 부인과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책이 코스모스 이다. 세이건의 업적은 과학에 대한 연구 그 자체보다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리는 면모가 강하나,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와 달리 연구 업적이 부족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현대 우주생물학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지목되는 사람이 칼 세이건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불멸의 업적을 인류사에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업적들만 봐도 학자로서 그의 실력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화성 탐사선 계획인 마스 패스파인더 프로젝트에 관여하던 중, 2년간 투병해온 골수이형성 증후군(Myelodysplastic syndrome (myelodysplasia))의 합병증인 폐렴으로 1996년 12월 20일에 사망했다. 이후 패스파인더는 1997년 화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했으며 착륙 지점은 고인을 기려 '칼 세이건 기념 기지'로 명명되었다. 그의 유해의 일부는 달에 있다는 소문이 퍼진 적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가 평생 동안 교수로 재직하던 코넬 대학교가 위치한 뉴욕 이타카(Ithaca)에 묻혀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