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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 향기] 돌비석 하나의 마음 - 김경배

수필가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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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을 오를 때마다 바람이 나뭇잎 사이로 속삭인다. 그 중에서도 장산의 바람은 유난히 맑고 또렷하다. 그 바람은 마치 누군가의 숨결처럼, 한 세기를 품은 채 지금도 산등성이를 맴돌고 있다. 장산의 한 자락, 이름 없이 피어나는 들꽃들 사이로 작은 기억이 솟구친다. 그 기억은 한 사람인 강근호姜槿虎선생의 숨결에서 비롯된다. 

 

강근호 선생 

    1888년 늦가을, 함경도 정평 땅에서 태어난 한 아이는, 먼 훗날 역사의 깊은 골짜기를 홀로 걷게 될 줄 알았을까? 보통학교를 마친 그는 함흥중학교에 진학했고, 1916년 배일운동에 뛰어들며 일제의 탄압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넣었다. 결국 수배자 신분이 되어 만주로 향했고, 1919년 3.1운동이 들불처럼 퍼질 무렵, 용정의 만세 시위 속에 섰다. 

 

    신흥무관학교,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공간에서 그는 사관생으로 훈련 받았고,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 소속으로 청산리 전투에 참전했다. 눈보라 속을 뚫고 한 발 두 발 내딛던 그때, 그의 눈에는 조국이 있었다. 독립군의 근거지를 파괴하러 온 일본군의 포성이 쏟아질 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자유시 참변과 러시아 군사학교에서의 시간, 그리고 다시 돌아온 만주 땅. 그곳에서 그는 스승이 되었고, 때로는 훈련관으로, 때로는 아버지처럼 독립군을 키웠다. 목숨을 내건 사람은 말보다 행동으로 조국을 품는다. 그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광복을 맞은 후에도 그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귀국 후 대한민족청년단의 교관으로, 이어 육군사관학교 8기로 다시 젊은 피들과 함께 걸었다. 그리고 6.25 전쟁. 또 다시 그는 전장에 섰다. 103사단 113연대장, 총탄과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은 전쟁터에서 그는 마지막 사선을 지켰다. 전쟁이 끝난 후, 부산 영도구에 정착해 소박한 삶을 살았던 강근호 열사. 하지만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청산리 전투에서 산화한 동지들을 위해 작은 돌비석이라도 하나 세워주기 바란다."

 

    그가 남긴 발자국은 지금도 장산에 살아 있다. 그의 아내 이정희 여사, 학도의용군 출신으로 그와 전쟁 중에 만나 평생을 함께한 그녀는, 그가 떠난 후 장산에 모정원母情苑을 세웠다. 장산개척단을 조직해 퇴역 군인을 돌보고 산림을 가꾸었다. 모정원은 이제 강근호 선생의 독립운동 흔적을 전시하는 조용한 기념관이 되었다. 지금도 126보병여단의 장병들이 그를 기억하며 모정원을 찾는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단지 헌화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다짐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신의 계승이다. 

강근호 선생의 부인 이정희 여사

 

    나는 생각한다. 돌비석 하나를 세우고자 했던 선생의 그 바람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다고. 아무도 모르는 산길에서도, 장병들의 경례 소리에서도, 조용히 살아남은 그 '작은 비碑'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문득, 나는 장산의 바람결에서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 조국을 사랑한 이들의 이름을, 제발 잊지 말아주시게." 

 

    그는 화려한 기념비를 바라지 않았다. 다만, 이름 없이 쓰러진 수많은 이들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1977년 그는 건국포장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졌다. 

 

 

  [작가의 생각]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虎死留皮 人死留名) 

 

    강근호 독립운동가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것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불태웠던 이름 없이 쓰러져간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이름을 새긴 비석을 세워주기를 바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특별한 분들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또 그 이름을 기리기 위해 교과서에 싣고 배우며, 각종 기념 행사에서 갖는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의 시간은, 우리가 잠시나마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추모의 시간입니다. 

   

    비석은 죽은 사람의 이름과 업적 등을 기록하여 후대에까지 그 업적이 알려지기를 바라며 그의 무덤 앞에 세웁니다. 
 

    호랑이는 죽으면 반드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자손들에게 그 이름을 길이 남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처음으로, 선물로 이름을 받습니다. 이름에는 부모의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집안의 어른들은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미리 지어 놓기도 하고, 태어난 후 태어난 날日과 시時를 바탕으로 이름을 짓기도 합니다. 

 

    '인생의 시작은 좋은 이름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친밀감을 느끼게 합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그가 한 생生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자기 존재를 알리는 표시가 되고 자기 존재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징표가 됩니다.

    이름은 곧 소리로, 여러 사람들에게 불리면서 한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름은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하는 것으로 누구나, 모든 것이 고유의 이름을 갖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 한 평생을 살다가 생生을 마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 그의 이름은 비석에 새겨지고 훗날 찾아올 후손들에게 그의 이름은 전해지게 됩니다. 

   

    '이름'이란 우리의 영혼을 담는 또 하나의 집입니다.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이름은 그가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불려지는 것이므로, 평생을 담는 그릇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름은 중요하여 상대방의 이름을 귀하게 불러주어야겠습니다. 

    이름을 불러줄 때 그 사람은 꽃으로 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이름은 곧 소리로, 여러 사람들에게 불리면서 한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우리 조국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름을, 제발 잊지 말아주세요."  

 

수필가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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