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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58] 이지호의 "화산"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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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

 

이지호

 

초록이 뼈들을 채워 넣은 등고선

태양을 향해 솟아 있다

지구에 모든 걸 던진 태양엔 심장이 없다

 

화강암에 심장을 넣어 피워 올린 꽃송이가 허공을 비튼다

설렘과 떨림

빛의 색칠에 신선이 놀다 가고

손바람 타고 흐르는 향기가 코끝에 닿아

봉우리 돌아 나오는 바람이 가슴께에 다다라 있다

 

누군가의 넓어진 세계는 산이 빼앗긴 어떤 지점일까

 

뚫린 절벽으로 드나드는 바람은

어제의 자연스러움을 잊었다

반복에서 쫓겨난

뜨거운 구름이 제멋대로 흐른다

어떤 그림자도 숨을 그늘이 없다

 

하기정에서

화산이 신선과 바둑을 두고 있다

완생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걸고

 

―『말 끝에 매달린 심장』(문학수첩, 2017)

중국 화산 꼭대기 부분에 정자가 있다.

  [해설]

  

  큰 산을 오르는 일

 

  중국 서안 쪽에 있는 큰 산인 화산(2,160m)을 보고 와서 쓴 시다. 흔히 태화산(太華山)이라고 불리는데 산봉우리의 모양이 마치 한 송이의 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신에 자를 쓴 것은 옛날에는 를 혼용했기 때문이란다. 시인은 산의 위용을 보고 제대로 묘사한다.

 

  화산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자연에 대한 묘사를 앞의 두 연에서 끝낸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로 시인은 사막이나 화산지대, 산맥 같은 대자연을 보면 왜소함을 느끼게 되고 유한함을 깨닫게 되는데, 이런 내용이 시의 주제를 이루게 마련이다. 이지호는 그런 판에 박힌 주제를 거부하고 화산에 머문다.

화산의 잔도(棧道)를 걸어갈 때 아슬아슬한데 바람이라도 불면 목숨이 위태롭다.

   하기정(下棋亭)은 화산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정자로, 신선이 내려와 장기를 두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인은 하기정에서 바둑을 두는 존재가 화산과 신선이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는데, “완생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걸고하는 것이니 바둑 자체가 재미있는 게임이 되었다. 시의 이 결구는 가운데 연, “누군가의 넓어진 세계는 산이 빼앗긴 어떤 지점일까와 연결이 된다.

 

  산은 인간에게 참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있다. 등산로, 방갈로, 전망대, 대피소, 케이블카……. 시인은 산의 심장 같은 바위 절벽을 뚫고 케이블카는 명작의 흐름을 깨트린 쇳조각 같았다. 케이블카 덕분에 정상까지 편안하게 올라갔지만 가소롭게 쳐다보는 경치에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게 했고 미안한 생각이 들게 했다니 역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이 문제다. 시의 주제는 그러나 문명비판이 아니라 자연예찬이다. 중국을 여행하면 엄청나게 긴 케이블카와 바위를 뚫은 엘리베이터도 타볼 수 있다. 석굴 속 부처상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볼 수 있다. 자연에게 강펀치를 먹이고 있는 것을 볼 때면 한편으로는 큰 감동을 받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영화 <아바타>의 촬영지였던 장가계나 원가계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손을 덜 타서 유지될 수 있었다.

  [이지호 시인]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2011년 창비 신인문학상에 시 「돼지들」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말끝에 매달린 심장』『색색의 알약들을 모아 저울에 올려놓고』를 냈다. 신동엽 문학기행 공저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 신동엽 아카이브 공저 『신동엽과 문화콘텐츠』를 냈다. 저서 『시인의 안양공공예술 산책』도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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