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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31] 김수엽의“아파트가 동네에 이사 오다”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아파트가 동네에 이사 오다

 

김수엽

 

모래를 시멘트와 비벼 먹은 레미콘이

몸통을 빙빙 돌려

멀미가 나 토하면

비로소

솟아난 골격 높이 오를 가문이다

 

노동을 밟고 커간 유리창 네모마다

불빛을 가득 채운 부잣집 동네에서

봄꽃도

향기와 함께 집들이에 초대된다

 

허공을 타고 올라간 부러운 발소리

층층이 착륙한 곳

웃는 모습 넘쳐서

단층집

지붕 지붕에 시끄럽게 쌓이는 밤

 

높이에 짓눌려서 쪼그라진 집마다

어둠에 포장된 채

저항도 잊은 저녁

분주한

자동차 소리만 주는 대로 채운다

아파트가 동네에 이사 오다_ 김수엽 시인 [이미지: 류우강 기자]

아파트가 우리 마을로 이사왔다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의 문명 종()처럼 등장한다.
 

"모래를 시멘트와 비벼 먹은 레미콘"은 생명체의 섭식 장면처럼 묘사되고, "멀미가 나 토하면 / 비로소 / 솟아난 골격"은 문명이 토해내는 산업의 부산물과 동시에 도시 진화의 뼈대가 형성되는 순간이다. 전통적 시간 속에서 서서히 뿌리내린 마을과 달리, 현대 문명은 기계의 속도와 노동의 뒤섞임 속에서 단숨에 스스로를 세운다.

 

유리창 네모에 "불빛을 가득 채운" 풍경은 도시의 번영을 비추지만, 그것이 부의 축적과 계급의 상징으로 전환되면서 자연조차 집들이에 초대된손님이 된다. 봄꽃은 원래 공동체의 계절을 수놓는 존재였으나, 여기서는 문명 앞에 장식물로 배치된다. 자연은 더불어 사는 주체가 아니라 풍경으로 소비되는 객체가 된 셈이다.

 

"층층이 착륙한 곳"이라는 표현은 미래적이다. 이는 아파트가 마치 우주선처럼 공중에 정박한 문명 기지임을 암시한다. 웃음이 넘치는 풍경 뒤편에서 시인은 "단층집 지붕 지붕에 시끄럽게 쌓이는 밤"을 보여준다. 다층 구조가 도래하며, 땅 위의 평면적 삶은 점차 그림자 아래로 누락된다. 이는 미래 도시에서 지하·저층·비주류 공간이 점차 배제되는 사회적 단층을 은유한다.

 

마지막 수가 가장 묵직하다.


"높이에 짓눌려서 쪼그라진 집들"은 단순한 물리적 대비가 아니라 문명의 그림자에 눌린 공동체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저항도 잊은 저녁은 대단위 도시문명이 닿을 때 나타나는 응답 불능의 상태 즉, 전통적 삶, 관계, 풍경이 변화를 거부하기보다 무력하게 흡수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는 것은 자동차 소리, 즉 문명이 남기는 기계적 심장박동뿐이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시인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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