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천상병의 "새"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31]
새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 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새』(조광출판사, 1971)

[해설]
살아 있는 자의 유고시집
이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시집이 있다. 천상병(1930〜1993) 시인이 살아 있는데 성춘복이 총대를 잡고 출판사를 알아보았고 김구용ㆍ김영태ㆍ송영택 등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유고시집을 냈으니 1971년 조광출판사에 나온 『새』라는 시집이다. 애당초 이 시는 1959년 5월 《사상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의 나이 29세 때였는데 흡사 자신의 앞날을 내다보고 쓴 시 같다. 나쁜 일은 고문을 6개월 동안이나 당한 것이고 좋은 일은 목순옥 씨와의 결혼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나왔을 때 그는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얼마나 심하게 고문을 당했는지 생식기능도 상실했고 치아도 거의 빠져 말을 어눌하게 했다. 저벅저벅 구둣발 소리만 들어도 사시나무 떨듯 떨며 공포에 질리곤 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시절의 친구 강빈구에게 돈을 몇 차례 얻어 썼는데 그 친구가 동베를린 체류 시에 북한의 공작금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유 없이 그가 돈을 주었을 턱이 없고 도대체 무슨 지령을 돈과 함께 받았냐고 수사관이 문초하며 전기고문까지 하니 넋이 나갈 만도 했다.
출감한 이후 천상병은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는 반편이 비슷하게 되었다. 성북구 돈암동에 사는 친구 김구용 시인의 집에 찾아가 밥을 얻어먹으려다가 삼선교에서 길에 놓여있는 자전거를 발견했다. 천상병은 무작정 자전거를 타려다가 마침 그 근처에 있었던 자전거 주인에게 붙잡혀 절도죄로 성북경찰서에 끌려갔다. 그곳의 경찰들은 음주와 영양실조로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횡설수설하는 천상병을 그대로 택시에 태워 서울시립정신병원으로 보냈다.
연락이 끊기자 친구들은 이 녀석이 어디 가서 죽었다고 믿고 여기저기 산재해 있던 시들을 모아서 유고시집을 냈다. 시의 첫 연을 보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다행히도 병원장이 신문에서 천상병 시인 유고시집 출간 기사를 보고 자칭 천상병이라고 하는 정신병자가 본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문사로 전화를 해서 친구 중 한 사람과도 통화가 되었다. 친구들이 병원에 가보니 천상병이 내가 천상병이라고 해도 안 믿어주어서 미치겠다고 하질 않는가. 친구 목순복의 여동생 목순옥이 이 불쌍하고 한심한 인물을 내가 돌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청혼을 했으니, 천상병은 비로소 안심하고 시를 써 첫 시집을 민음사에서 낸다. 1979년이었다. 연보를 보니 『새』가 첫 시집이라고 되어 있는데 본인이 낸 시집이 아니라 유고시집이었기에 제1시집은 민음사에서 낸 『주막에서』이다.
[천상병 시인]
일본에서 1930년에 태어난 천상병 시인은 1945년 일본에서 귀국, 마산에 정착했다. 1949년 마산 중학 5년 재학 중 당시 담임 교사이던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시 「강물」이 《문예》에 추천되었다. 1950년 미국 통역관으로 6개월 근무했으며, 1951년 전시에 부산에서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하여 송영택, 김재섭 등과 동인지 『처녀지』를 발간했다. 1952년 시 「갈매기」로 추천이 완료되었다.
1954년 서울대 상과대학을 수료했으며, 1964년 김현옥 부산시장의 공보비서로 약 2년간 재직했다. 1967년 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어 체포, 약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71년 행려병자 취급을 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입원했다. 1972년 목순옥과 결혼한 후 시집 『주막에서』『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과 천상병 문학선집 『구름 손짓하며는』을 출간했다. 1988년 간경화증으로 춘천 의료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도중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통고를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회생했다. 이후 시집 『귀천』『요놈 요놈 요 이쁜놈』, 공동시집 『도적놈 셋이서』, 수필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를 출간했다. 1993년 4월 28일에 귀천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