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13] 김〇〇의 "구카"
구카
김〇〇
어린 봄에는 쑥이라 했지요
어머니 보셔요 국화에요
쑥이 아녀요
에구 내가 눈이 갔다
구카도 구별 못하고
아니에요 두 놈은 사촌간이에요
젖빛 솜털을 보셔요
꽃피기 전 풋내 땐 비슷하죠
하얀 범벅이 똑같아요
구월 구카, 화투짝에 나온다
오늘은 술마시는 점괘다
저켠을 건너와 한창을 견뎌주니
구카란다
예까지 국화내가 나요
엄마내가 나요
그러냐
내가 타고 갈 꽃마차 만들어야지
함께 하늘 가는 꽃이란다
—《새길》(2020년 가을호)

[해설]
교도소 감방에서 쓴 시
이 시를 쓴 이의 나이와 학력을 모른다. 교도소 수용자 종합문예지인 《새길》에 실려 있는 시이기 때문이다. 작자의 죄명도 형량도 모르지만 이 시에서 느껴지는 것은 진정성이다. 《새길》에는 이름이 나와 있는데 비매품인 책이고 혹시나 외부로 이름이 유출되기를 본인이 원하지 않을 수 있기에 성만 밝혔다.
화자의 어머니는 꽃 피기 전의 쑥과 어린 국화를 분간하지 못해 “에구 내가 눈이 갔다/ 구카도 구별 못하고” 하면서 자책한다. 눈이 침침해서 잘 안 보이는 것일까? 어머니의 자책을 듣고 아들은 제3연에서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변호한다. 하얀 범벅이 똑같다고. 제4연에 이르러 시의 분위기는 기승전결의 ‘전(轉)’처럼 전환을 보여준다. 화투 점은 일수 점이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나? 어머니가 가끔 술도 한 잔씩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내 할머니도 꼭 아침에 화투로 ‘오늘의 운세’를 보셨다.
봄의 쑥은 생(生)을 상징하고 가을의 국화는 사(死)를 상징한다. 하지만 김 아무개 씨는 “저켠을 건너와 한창을 견뎌주니/ 구카”라고 하였다. 여름의 폭풍우를 이겨내야 국화는 가을을 맞이할 수 있다. 저절로 피어나는 꽃은 없고 흙과 수분과 햇빛의 조화가 있어야 한다. 식물도 환경을 견디고 이겨내야 꽃을 피울 수 있다. 아들이 “예까지 국화내가 나요/ 엄마내가 나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자신의 목숨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고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냐/ (구카로) 내가 타고 갈 꽃마차 만들어야지/ (구카는 나랑) 함께 하늘 가는 꽃이란다”라고. 흡사 유언이라도 말하듯 아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다.
이 시는 감방 한구석에서, 즉 의자와 책상이 없는 공간에서 쓴 것이다. 죄를 지어 형을 살고 있지만 《새길》이란 지면이 있기에 김 아무개 씨는 시를 썼다. 짐작하건대 노모는 바깥세상에서 자식의 출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훗날 이 시가 실린 《새길》을 갖고 나가 어머니에게 보여드린다면 노모는 자식을 껴안고 통곡할 것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