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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34] 서연우의 "캐리커처"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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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서연우

 

귀걸이는 그려 넣지 마세요

 

축제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앉았습니다

 

마주 보는 당신이 웃네요

마주 보는 나도 웃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

서로 눈이 맞은 겁니다

 

배우같이 그리지는 마세요

서로 다르게 흐르는 한 호흡으로

나는 당신에게서 나를 보고

당신은 내게서 당신을 봤을까, 싶네요

 

우리는 어떤 얼굴로 마주하게 될까요

 

마주 보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서요

 

, 이제 놀라야 합니까

 

당신에게서 내 얼굴을 하나 가져갑니다

 

원래의 얼굴은 두고 갈게요

 

―『당신에게서 내 얼굴을 하나 가져갑니다』(걷는사람, 2025)  

캐리커처 _ 서연우 시인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축제가 있을 때 캐리커처 그려주는 아마추어 화가 앞에 앉아본 경험이 있는가요? 두 사람이 50cm 정도 거리를 두고 앉아서 서로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상황이 한동안 전개됩니다. 참 어색하지만 유머러스한 상황이죠. 화가는 손님에게 미소를 보입니다. 표정을 그렇게 딱딱하게 하고 앉아 있지 말고 나처럼 웃음을 지어 보라는 무언의 부탁을 하는 거겠지요. 웃는 낯에 침 뱉으랴.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나도 미소를 짓습니다. 하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 서로 눈이 맞은 거지요. 이 말을 이상한 뜻으로 받아들이지 말아 주세요.

 

  제5연은 교감이라고 할까요 이심전심이라고 할까요 마음이 통한 상태를 표현했습니다. 대화 한마디 없이 얼굴만 서로 마주 보면서 따뜻한 감정의 교류가 가능하지요. 두 사람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상관없고, 나이도 상관이 없습니다. 화가는 그림을 잘 그려야 하고 손님은 돈이 아깝지 않아야 합니다.

 

  이윽고 캐리커처 그리기가 끝났습니다. 돈을 주고 그림을 받고 두 사람이 헤어지지만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요? 아마도 거의 없을 겁니다. 시의 마지막 5연이 재미있습니다. 미소 머금은 당신이 정성껏 그린 내 얼굴을 나는 샀고 당신은 돈을 조금 번 것이지요. 하지만 원래의 내 얼굴은 두고 갈 테니, Don’t Forget to Remember And the love that used to be I still remember you I love you……. 거래가 끝났고 인사를 하고 두 사람은 헤어집니다.

 

 (개인적인 경험 한토막. 저는 귀를 움직입니다. 살짝 움직이는 게 아니라 크게 움직일 줄 알지요. 중국 여행 중 캐리커처 그려주는 아저씨 앞에서 가만히 부동자세로 앉아 있자니 심심해서 귀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저씨 웃느라고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습니다. 너무 안 닮게 그려 귀국해서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서연우 시인]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2012년 《시사사》 신인추천작품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라그랑주 포인트』가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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