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그림 19 ] "The Braided Forest〉" 동양의 선으로 엮어낸 서양의 신화, 감정의 숲을 걷다 - 지현정 작가

지현정 작가의 신작 〈The Braided Forest〉가 ‘좋은 그림’ 코너를 통해 소개한다. 이 대형 회화는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 인간의 내면과 기억, 감정, 관계를 하나의 숲으로 엮어낸 서사적 공간이다. 한지 위에 펼쳐진 아크릴과 과슈의 색채는 동양화의 섬세한 선과 여백의 미학을 바탕으로, 서양 회화의 신화적 상징성과 감정의 깊이를 담아낸다.
작품 속 인물은 길게 땋은 머리카락을 붉은 나뭇가지와 함께 엮어내며, 마치 숲의 일부가 된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머리카락과 가지는 경계 없이 얽혀 있고, 그 사이로 피어난 흰 꽃과 노란 꽃들은 생명과 치유의 상징처럼 화면을 가득 채운다. 푸른빛과 초록빛이 번지는 배경은 감정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관람자에게 내면의 풍경을 마주하게 한다.
이 숲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기억의 숲이며, 감정의 숲이고, 관계의 숲이다. 작가는 실과 머리카락, 꽃과 나무를 통해 보이지 않는 감정의 실을 시각화하고, 그 실이 어떻게 얽히고 풀리며 인간의 내면을 구성하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은 관람자가 숲을 걷는 것이 아니라, 숲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기억, 상처와 치유를 마주하게 된다.
지현정의 회화는 동양화적 기법으로 서양화적 신화를 탄생시키는 독창적인 시도다. 동양화의 선과 여백은 감정을 함축하고, 서양화의 색채와 구조는 그 감정을 신화처럼 확장시킨다.
그의 화면은 서정성과 긴장감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아름다움 속에 상처를 담고, 상처 속에 치유의 가능성을 심는다.
〈The Braided Forest〉는 문화적 경계를 넘나드는 시각적 언어로, 동서양의 미학을 엮어낸다. 땋아진 머리카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 관계와 시간의 실타래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상징하며, 숲이라는 공간 안에서 하나의 신화로 다시 태어난다.
지현정의 〈The Braided Forest〉는 회화가 감정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동양의 선으로 서양의 신화를 엮어낸 이 작품은, 우리가 ‘좋은 그림’이라 부를 수 있는 가장 깊은 이유—그림이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를 꿰뚫는 순간—을 선사한다.
관련기사
[류안이 만난 작가] 감정의 실을 따라, 기억의 풍경을 짓다 - 지현정 작가
https://koreaartnews.com/post/zkyDU1V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