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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18】 쌀쌀한 삼복
문학/출판/인문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18】 쌀쌀한 삼복

시인 김선호 기자
입력
[사설시조]

쌀쌀한 삼복

김선호

 

  땅내 맡은 논배미서 벼들 모여 앙알대는디

 

  쌀독에서 인심 난다 그런 속담 안 있드나 있어야만 베푸니까 많을수록 좋은 거인디 그만큼 쌀이 귀하니 그런 말이 생긴 기라 이팝나무 쳐다보며 허기진 배 안 달랬나 흡사 그 흰쌀밥 겉애 보기만 해도 든든했제 보릿고개 넘을 무렵 그 꽃 참 화사했데이 매운 눈 부벼 가며 엄니 안치던 가마솥 봤나 소복한 보리 가운데 흰쌀 쪼께 둘러놓고 흰밥만 따로 떠다가 할아버지 드렸데이

 

  콩 심은 논바닥이 내 집인 줄 지레 알고 잠자던 낙곡 깨워 퍼렇게 싹 틔우는디 벼 잡는 제초제 뿌려 아예 씨를 말리드만 오곡 중에 맨 앞자리 거만하게 앉던 쌀인디 밥심으로 산다 할 때 그 밥이 쌀밥인디 요로콤 애물단지 될 줄 누군들 알았드나 빵조각에 뺏긴 아침 나라 잃은 듯 서글픈디 여기 주네 저기 주랴 지민장사 울화 치밀고 논에다 딴걸 심으니 우린 어데로 가야겠노

 

  삼복이 에워싸는디 와 이리 쌀쌀하노!

땅내 맡은 논배미 사진(출처-sjsori.com)
땅내 맡은 논배미 사진(출처-sjsori.com)

사십 도 폭염에 모두가 지친다. 사람도 헉헉대고 밭작물도 배배 돌아간다. 산마루의 나뭇잎도 축 늘어졌다. 유독 아랑곳하지 않는 건 논배미다. 물을 끼고 있는 벼 포기는 벌써 땅내를 맡아 거무스레하다. 섣부른 예감이지만, 염천은 풍년의 전주곡이다. 포기 버는 벼를 보며 농부는 뿌듯했다. 봄부터 쌓인 피로가 땀방울에 녹아내렸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벼농사 풍년 들까 걱정하는 세상이다. 생산을 쫓는 소비가 점점 뒤처진다. 1964120.2㎏이던 1인당 쌀소비량이, 1994108.3, 202455.8㎏으로 반 토막 났다. 쌀이 남아도니 가격, 보관 등 관리 문제가 뒤따른다. 볏가리에 불 지르는 농민단체가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급기야 벼 대신 콩, , 보리 같은 전략작물 재배를 권고한다. 남아도는 쌀 대책이 담긴 양곡관리법도 등장했다. 하지만 아직도 농민과 정부 사이에 간극이 크다. 거부권 행사와 재발의를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최근 전국쌀생산자협회는 지난해 개정안에서 후퇴했다는 비판성 성명을 발표했다.

 

개정안을 두고 싸우는 이해당사자야 그렇다 치자. 벼는 무슨 죄인가. 대대로 살아온 제집에서 내쳐진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쌀, 쌀 하며 치고받는 틈새에 끼어 앞날이 불안하다. 삼복더위가 절정인데도 벼의 체감온도는 겨울처럼 쌀쌀하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김선호 시인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으밀아밀』등 네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

 
 
시인 김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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