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69] 이우걸의 "다리미"
다리미
이우걸
한 여인이 떠났습니다, 월요일 자정 무렵
아들, 딸은 멀리 있었고 아무도 몰랐습니다
가끔은 들렀다지만
온기라곤 없었습니다.
식은 다리미처럼 차게 굳어 있었습니다
그 다리밀 데우기 위해 퍼져있던 코일들이
전원을 찾아 헤매다
지쳐 눈을 감았습니다.
한때는 뜨거운 다리미로 살았겠지요
웃음도 체온도 나눠주던 얼굴이지만
전원을 잃어버리자
그만 눈을 감았습니다.
—『4인행/ 현대시조 4인선집』(문학저널, 2024)

[해설]
엄마, 홀로 돌아가시다
대한민국의 1인 가구가 804만 5,000가구를 기록했다. 가족 없이, 혹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이가 이렇게 많다. 이 수는 해마다 늘어날 것이다. 일과를 무사히 끝내고 귀가했을 때 집에 아무도 없다면? A씨는 바로 텔레비전을 튼다고 했고 B씨는 바로 라디오를 켠다고 했다. C씨는 강아지를 안는다고 했고 D씨는 고양이를 안는다고 했다. C씨와 D씨는 정적이 참기 힘들어 멍멍, 냐옹 소리라도 들으려고 반려견과 반려묘를 샀다고 한다.
이우걸 시조시인은 한 여성의 안타까운 죽음을 3수로 된 시조로 풀어냈다. 아들, 딸은 멀리 있었고 아무도 어머니의 임종 순간을 몰랐었다고 한다. 시골에 노부부가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은 한 사람이 도시의 아들네 혹은 딸네 집으로 간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노인네가 집을 지키면서 조석을 끓여 먹을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다리미는 온기를 상징한다. 여러 사람이 같이 살아야지 집에 훈훈한 기운이 감돈다. 간혹 아옹다옹 말다툼을 하더라도 같이 살아야지 대화를 할 수 있고 음식도 같이 먹을 수 있다. 혼자 살면 스마트폰 울리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한다. 시인의 말마따나 웃음도 체온도 나누며 살아야지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을까.
예전에는 다리미라는 것이 가장이 정장을 입을 때 아내가 다리미를 사용해 양복 선이 선명해지도록 다리는 데 쓰는 가전제품이었다. 아버지의 양복은 가장이 밖에 나가 권위를 내세울 때 필요한 날개였고 어머니는 비장의 무기인 다리미를 꺼내 양복의 날개를 세우곤 했다. 그런데 이 시의 주인공인 어머니는 이제 막 고독사하였다. 방에서 혼자 숨을 거둔 것이다. 나도 십중팔구 그렇게 홀로 숨을 거두지 않을까.
[이우걸 시인]
1946년 경남 창녕 출생.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저녁 이미지』『사전을 뒤적이며』『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이명』 등, 시조비평집 『현대시조의 쟁점』『우수의 지평』『젊은 시조문학 개성 읽기』『풍경의 해석』 등이 있다. 중앙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정운시조문학상, 백수문학상, 유심시조작품상, 외솔시조문학상 등을 수상.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