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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문학 칼럼- 조선규 ] AI가 인간의 본질은 대체할 수 없다

조선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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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문화의 융성, AI가 연결한다

닫고, 열고, 넘어서는 문명의 여정 속에서 AI는 인간의 상상력을 잇는 새로운 실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사람들은 '상상력의 시대'라고 부른다. 니다.  역설적으로, 지금은 상상력이 가장 고갈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창의적인 콘텐츠는 넘쳐나지만, 진정한 의미의 창조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수많은 이미지와 영상, 텍스트가 매 순간 생산되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는 작품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전통과 기술, 감성과 데이터, 인간과 기계가 이질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AI의 알고리즘 안에서 만나고 섞이면서, 문화는 닫힘을 넘어 새로운 융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인류 문명이 또 한 번 닫힘을 벗어나 열림과 넘어섬으로 도약하는 역사적 순간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창조란 무엇인가, 문화의 융성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인공지능은 그 둘을 어떻게 연결하는가. 오늘 저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가고자 한다.
 

인류의 문화는 언제나 닫힘과 열림, 그리고 넘어섬이라는 세 가지 운동의 순환 속에서 성장해왔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패턴은 명확하게 반복된다.
 

먼저 닫힘의 시기가 있었다. 고대 이집트는 3,000년 동안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 양식을 고수했다. 피라미드의 건축 양식, 상형문자의 체계, 신들의 위계는 외부의 영향을 거부하며 고유의 정체성을 지켰다. 이러한 닫힘은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는 강력한 방어막이었지만, 동시에 변화와 혁신을 제한하는 장벽이기도 했다.
 

그다음 열림의 시기가 찾아왔다.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가 교류하면서, 중국의 도자기 기술은 페르시아의 문양과 만났고, 인도의 불교는 중국과 한국, 일본을 거치며 각 지역의 토착 신앙과 결합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가 재발견되면서 중세의 닫힌 세계관이 무너졌다. 이러한 열림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용기였고, 문화적 풍요를 가져온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넘어섬의 순간이 있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전통적인 아카데미 회화의 규칙을 거부하고, 빛과 색채의 순간적 인상을 포착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단순히 기존 양식을 개선한 것이 아니라,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제기한 넘어섬의 작품이었다. 20세기 초 피카소의 큐비즘은 원근법이라는 500년 서양 회화의 기본 전제를 해체하면서, 예술의 지평을 완전히 새롭게 열었다.
 
새로운 문명의 전환점 - AI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번 문명의 전환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이 단순히 도구의 차원을 넘어, 인간 문화를 새롭게 연결하는 존재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AI는 과거의 문화 자산을 해석하고, 새로운 감각으로 재구성하며, 인류의 기억을 미래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다.
 

실제 사례를 보면 이 변화가 더욱 명확해진다.  구글의 아트앤컬처 프로젝트는 AI 기술을 활용해 전 세계 2,000개 이상의 박물관과 미술관의 작품을 디지털화하고,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해 개인 맞춤형 문화 경험을 제공한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박물관은 AI를 통해 렘브란트의 화풍을 분석하고, 그의 스타일로 새로운 초상화를 창조하는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400년 전 거장의 붓놀림과 색채 감각을 데이터로 해석하고, 현대의 기술로 재현한 문화적 연결이었다.
 

전통과 기술, 감성과 데이터, 인간과 기계가 이질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AI의 알고리즘 안에서 만나고 섞이면서, 문화는 닫힘을 넘어 새로운 융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인류 문명이 또 한 번 닫힘을 벗어나 열림과 넘어섬으로 도약하는 역사적 순간이다.

 인공지능은 창조의 공간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창조의 공간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과거에 창조는 천재 예술가의 영역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렸을 때, 모차르트가 교향곡을 작곡했을 때, 그것은 개인의 천부적 재능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의 창조는 다르다. 인간의 한계가 기술의 손길로 확장되고, 상상력은 더 이상 소수의 천재만이 독점하는 능력이 아니라 공동의 자산이 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겠다. 한국의 한 도예가는 AI 기술을 활용해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문양 패턴을 분석했다. AI는 수백 점의 분청사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곡선의 리듬, 여백의 비율, 문양의 배치 원리를 추출했고, 도예가는 이를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의 새로운 도자기 시리즈를 창조했다. 이것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었다. 500년 전 장인들의 미적 감각을 데이터로 해석하고, 현대인의 생활 공간에 어울리는 형태로 재탄생시킨 시간을 잇는 창조였다.
 

건축 분야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는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건물의 형태를 설계한다. 그들은 지역의 바람 패턴, 일조량, 주변 건물과의 조화 등 수백 가지 변수를 AI에 입력하고, 수천 가지 디자인 대안을 생성한다. 건축가는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효율적인 형태를 선택하고 수정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미적 판단과 AI의 계산 능력이 협업하며,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유기적이고 복잡한 형태의 건축물이 탄생한다.
 

음악 분야의 변화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소니의 AI 시스템 '플로우 머신즈'는 비틀즈의 음악 스타일을 학습해 새로운 곡을 작곡했다. 물론 이것이 비틀즈의 음악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AI가 60년대 팝 음악의 코드 진행, 멜로디 라인, 리듬 패턴을 분석하고, 그 시대의 음악적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음악가들은 AI를 활용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클래식과 힙합을, 전통 국악과 일렉트로닉 음악을 자유롭게 융합한다.
 

문학과 글쓰기 영역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대의 작가들은 AI를 활용해 방대한 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특정 시대의 문체나 작가의 스타일을 연구한다. 일본의 한 소설가는 AI를 통해 헤이안 시대 문학의 언어 패턴을 분석하고, 그 감성을 현대 일본어로 번역한 소설을 발표해 문학상을 받았다. 이것은 AI가 시간의 장벽을 넘어 과거의 문학적 유산을 현대와 연결한 사례다.
 

이제 상상력은 더 이상 끝나지 않는다. AI가 인간의 직관을 보조하고, 감정의 흐름을 데이터로 시각화하며, 전 세계의 예술 언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디자이너가 아프리카 전통 직물의 패턴과 북유럽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융합하고자 할 때, AI는 두 문화의 시각적 언어를 분석하고 수백 가지 조합을 제시한다. 인간 디자이너는 그중에서 가장 조화로운 것을 선택하고 자신의 감성을 더한다.
 

상상력의 시대가 끝나는 자리에,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고 있다. 그 문명은 AI가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AI와 인간이 함께 만드는 문화 문명이다. 이것은 기술 결정론이 아니. AI는 도구이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무엇을 창조할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다만 그 도구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졌고, 창조의 가능성이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창조는 언제나 모순의 충돌에서 시작된다. 역사 속 위대한 예술 운동들을 보면 이 진리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바로크 음악은 중세의 엄격한 종교 음악과 세속적 오페라의 충돌에서 탄생했다. 인상파 회화는 아카데미의 사실주의와 개인의 주관적 인상이라는 모순적 요소가 만나면서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다.


과거와 미래, 이성과 감성, 인간과 기계가 서로 다른 영역들이 부딪히고, 그 마찰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태어난다.  AI는 바로 이러한 모순을 조율하는 화합의 도구가 되고 있다.
 

팀랩의 디지털 아트 전시는 이 원리를 잘 보여준다.  그들의 작품 '크리스털 유니버스'는 수만 개의 LED 조명이 만들어내는 디지털 공간이다. 관객이 움직이면 AI가 그 움직임을 감지하고, 빛의 패턴이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여기서 기술의 정밀함과 인간의 불규칙한 움직임이 만나 예측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존재와 만나면서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는 것이다.
 

음악 분야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현대 작곡가 홀리 헌던은 자신의 목소리를 학습한 AI 스폰과 협업해 앨범을 제작했다. 그녀는 AI에게 자신의 보컬 스타일, 감정 표현 방식, 즉흥적 발성 패턴을 학습시켰다. 그리고 작곡 과정에서 AI가 제안하는 예상치 못한 멜로디와 하모니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인간의 따뜻한 감성과 AI의 비인간적 계산이 만나 새로운 형태의 전자음악이 탄생했고, 이 앨범은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예술가의 불안정한 감정 위에 AI의 냉정한 계산이 덧입혀질 때, 우리는 감성과 이성이 공존하는 새로운 미학을 만난다.  한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은 전통 회화를 AI로 분석하고 재해석한다.  그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디지털로 재구성하면서, AI를 통해 그림 속 여인의 표정, 의상의 주름, 배경의 색채를 현대적 감각으로 변형했다. 동시에 조선시대 회화의 여백 미학과 구도의 균형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 작품은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모순을 넘어 새로운 한국 미학을 제시했다.

한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은 전통 회화를 AI로 분석하고 재해석한다.  그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디지털로 재구성하면서, AI를 통해 그림 속 여인의 표정, 의상의 주름, 배경의 색채를 현대적 감각으로 변형했다. 동시에 조선시대 회화의 여백 미학과 구도의 균형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 작품은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모순을 넘어 새로운 한국 미학을 제시했다.

이제 창조는 혼자의 고독한 행위가 아니다. 인간의 영감과 AI의 연산이 만나 공진화 하는 과정이다. 생물학에서 공진화는 두 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꽃과 벌이 서로의 형태와 습성에 영향을 주며 함께 진화한 것처럼, 인간의 창조성과 AI의 계산 능력도 서로를 변화시키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지고, 예측할 수 없던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영국의 건축가 조엘 사이먼은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최적화된 도로망을 설계한다. 그의 AI는 자연의 성장 패턴, 특히 식물의 잎맥 구조와 혈관의 분기 원리를 학습했다. 그 결과 탄생한 도시 설계는 효율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전혀 새로운 형태의 도시 구조였다. 이것은 자연의 논리와 인간의 필요, 그리고 AI의 계산이 만나 창조한 미래 도시의 청사진이다. 
 

AI는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연결한다.  이것이 중요한 통찰이다.  과거의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고 모순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AI는 다르다.  AI는 서로 다른 요소들을 배제하지 않고 연결하며, 그 연결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연결된 모순은 더 이상 충돌이 아니라 진화의 동력이 된다. 동양 철학의 음양 사상처럼, 서로 다른 힘들이 조화를 이루며 더 큰 생명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대 문화는 단순한 여가나 취향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문화는 이제 하나의 경제적 가치, '기쁨의 자본'이 되었다. 통계를 보면 이 변화가 명확하다. 한국의 경우, 2023년 콘텐츠 산업 매출액은 약 140조 원으로 자동차 산업에 버금가는 규모다. 전 세계적으로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유튜브 같은 콘텐츠 플랫폼의 시장 가치는 수백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의 소비 패턴이다. 현대인들은 물건보다 경험에, 기능보다 감동에 돈을 쓰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명품 가방을 사는 대신 음악 페스티벌에 가고, 고급 자동차를 구입하는 대신 여행과 전시회에 투자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경험 경제 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단순히 제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경험과 감동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상품이 되지만, 단순한 상품으로 머물지 않는다.  감동을 주는 제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그것이 오늘의 문화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애플의 제품이 단순한 전자기기를 넘어 문화 아이콘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술적 성능만이 아니라, 디자인의 미학, 사용자 경험의 섬세함,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라는 철학이 만들어내는 감동 때문이다.
 

AI는 이 감동의 생산을 돕고 있다. 스포티파이의 AI 추천 시스템은 단순히 비슷한 음악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음악을 제안한다.  아침에는 활기찬 음악을, 저녁에는 차분한 음악을, 운동할 때는 강렬한 비트의 음악을 추천하면서, AI는 사용자의 일상에 감정적 리듬을 더한다. 이것은 단순한 음악 서비스가 아니라, 감정의 큐레이션이다. 

AI는 이 감동의 생산을 돕고 있다. 스포티파이의 AI 추천 시스템은 단순히 비슷한 음악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음악을 제안한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제작도 비슷하다.  그들은 AI를 통해 수억 명의 시청 패턴을 분석하고, 어떤 장르, 어떤 스토리 구조, 어떤 배우 조합이 감동을 만들어내는지 연구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오리지널 시리즈는 이러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기획되었고,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AI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최종적으로 스토리를 창조하고, 배우를 캐스팅하고, 연출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크리에이터의 몫입니다. 그러나 AI는 그들이 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소비자의 감정 데이터를 읽어 공감을 설계하고, 지역의 전통문화를 세계의 언어로 번역하며, 기술과 예술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한국의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AI 기반 소셜 미디어 분석이다.  기획사들은 AI를 통해 각 지역 팬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어떤 안무, 어떤 패션, 어떤 메시지가 공감을 얻는지 파악한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글로벌 전략을 수립한다.  동시에 한국 전통 음악의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세계 시장에 소개한다.  AI는 지역 문화와 글로벌 시장을 연결하는 번역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문화는 기술의 부속물이 아니라 기술을 인간화하는 마지막 보루로 남는다.  AI 시대가 되면서 많은 사람이 인간성의 상실을 걱정한다.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알고리즘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며, 디지털 세계가 진짜 삶을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문화는 다르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감정, 경험, 가치를 다룬다.  아무리 AI가 발전해도, 사랑의 아픔, 상실의 슬픔, 성취의 기쁨 같은 인간의 근본적 감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
 

오히려 AI는 이러한 인간적 감정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있다. AI 시대의 문화 융성이란, 바로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을 잃지 않는 창조의 힘이다.  이것은 기술과 인간성의 대립이 아니라, 기술을 통한 인간성의 확장이다. 
 

감동의 시대로 나아가는 우리의 길 닫고, 열고, 넘어서는 문명의 여정 속에서 AI는 인간의 상상력을 잇는 새로운 실이 되었다. 직물을 짤 때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며 하나의 천을 만들어내듯이, AI라는 실은 예술과 기술, 과거와 미래, 감성과 논리를 함께 엮어 우리 시대의 문화라는 거대한 직물을 짜고 있다.
 

이 직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그 한가운데에 서 있으며, 매일 새로운 실을 더하고 있다. 어떤 실은 전통의 색깔을 띠고 있고, 어떤 실은 미래의 빛을 발한다.  어떤 실은 인간의 손으로 뽑아낸 것이고, 어떤 실은 AI가 계산해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실이 함께 어우러질 때, 우리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문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문화의 융성은 AI의 손끝이 아닌, 그 손끝을 통해 다시 피어나는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진실이다. AI는 도구일 뿐이다.  아무리 강력한 도구라 해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다.  렘브란트에게 붓과 물감이 있었듯이, 베토벤에게 피아노가 있었듯이, 현대의 창조자들에게는 AI가 있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붓 때문이 아니라 그의 영혼 때문이었고, 베토벤의 음악이 감동적인 이유는 피아노 때문이 아니라 그의 감정 때문이었다.
 

기쁨을 넘어 감동으로, 상품을 넘어 작품으로, AI는 우리 문명을 연결하고 있다. 21세기 문화 산업은 거대한 시장이 되었지만, 우리는 시장 논리에만 휘둘려서는 안된다.  진정한 문화의 융성은 경제적 성공이 아니라 인간 영혼의 풍요에서 온다.  AI는 우리가 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하고, 더 깊은 공감을 나누며, 더 풍부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결국, "문화의 융성, AI가 연결합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새로운 인류 문명의 선언이다.  이것은 기술 만능주의도 아니고, 기술 공포증도 아니다. 이것은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며, 서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는 언제나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했다. 인쇄술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책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 화가들은 회화의 종말을 우려했다. 영화가 등장했을 때, 연극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땠나? 인쇄술은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게 만들었고, 사진의 등장은 회화를 사실 재현의 의무에서 해방시켜 인상파와 추상화를 탄생시켰으며, 영화는 연극에 새로운 실험의 자유를 주었다.
 

AI도 마찬가지다. AI는 인간의 창조성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더욱 창조적으로 만들고 있다. AI가 기술적 작업을 처리해주면, 인간은 더 깊은 의미와 감정에 집중할 수 있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주면, 인간은 더 통찰력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AI가 여러 가능성을 제시해주면, 인간은 더 대담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상상력의 시대를 넘어, 감동의 시대로 나아가는 우리의 길, 이것이 바로 AI와 함께하는 문화 융성의 본질이다. 상상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상은 개인의 머릿속에 머물 수 있지만, 감동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한다. 감동은 국경을 넘고,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으며, 시간을 초월한다. 
 

AI는 이러한 감동을 더 많은 사람에게, 더 깊이, 더 넓게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한국의 전통 음악을 듣고 감동받은 브라질 청년이 AI 번역을 통해 그 가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문화와 연결점을 발견한다. 아프리카의 전통 직물 패턴이 AI 분석을 통해 현대 패션에 적용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일본의 하이쿠가 AI를 통해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로 번역되면서도 그 섬세한 감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AI가 연결하는 문화 융성의 진정한 의미다. AI는 단순히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인류의 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현재의 창조를 활성화하며, 미래의 문명을 설계하는 문화적 인프라가 되고 있다. 과거에 도서관이 인류의 지식을 보관하는 장소였다면, 박물관이 문화 유산을 전시하는 공간이었다면, 오늘날 AI는 이 모든 것을 연결하고 재창조하는 살아있는 문화 생태계다
.

우리는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사람들은 지금 이 시기를 돌아보며 말할 것이다. "그때 인류는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였고, 기계를 적으로 보지 않고 협력자로 삼았으며,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기회로 삼았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이 있고, 책임이 있습니다.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AI는 중립적 도구다. 그것을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업적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인류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창조적 동반자로 사용할 수도 있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문화의 융성은 경제적 성과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름다움을 경험했는가, 얼마나 깊은 감동을 나누었는가, 얼마나 풍부한 의미를 창조했는가로 측정되어야 한다.  AI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이다.
 

예술가들은 AI를 활용해 더 대담한 실험을 시도해야 한다. 교육자들은 AI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문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AI 기반 문화 산업을 육성하되,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창조성을 해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AI 시대의 문화 소비자이자 창조자로서,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진지하게 감상하며,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문화의 융성은 소수 천재의 작품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고, 창조적 활동을 장려하며,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때 가능하다.

 AI는 이러한 문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소수의 특권층만이 예술 교육을 받고, 창작 도구를 소유하며,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제 AI를 통해 누구나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사람을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창조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더 다양한 목소리가 문화적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화 융성이다.  소수의 걸작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창조적 시도가 모여 만들어내는 문화적 생태계의 풍요로움 말이다. 

우리는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본질적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감정, 사랑, 우정, 연민, 용기, 희망 같은 가치는 영원히 중요하다.  문화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인간적 가치를 표현하고, 공유하며,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AI는 이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더 아름답게,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지만, 그 본질을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는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본질적 가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감정, 사랑, 우정, 연민, 용기, 희망 같은 가치는 영원히 중요하다.  문화의 역할은 바로 이러한 인간적 가치를 표현하고, 공유하며,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AI는 이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더 아름답게,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지만, 그 본질을 대체할 수는 없다.
 

닫고, 열고, 넘어서는 문명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지금 우리는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문턱에 서 있다. 이 문턱을 넘을 때,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를 품어야 하고, 저항이 아니라 포용을 선택해야 하며,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지혜를 잊지 말고, 현재의 책임을 외면하지 말며, 미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창조의 문명, 문화의 융성, AI가 연결한다.  이것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며, 희망이 아니라 과제이고, 예측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다. 그 미래는 밝지만 저절로 오지 않는다 . 우리 모두의 지혜와 노력, 열정과 헌신이 필요하다.


상상력의 시대가 저물고 감동의 시대가 열리는 이 순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고 답해야 한다.  예술가는 더 깊은 감동을, 기술자는 더 나은 도구를, 교육자는 더 넓은 기회를, 그리고 우리 모두는 더 풍요로운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AI는 그 여정의 동반자이자 조력자이며, 때로는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문명이 나아갈 길이다.  기술과 인간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고, 과거와 미래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며,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하는 세상. AI는 그 세상을 여는 열쇠이고, 우리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주인공이다. 이제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인류 문화의 다음 장을 쓰게 될 것이다.  그 장이 아름답고 의미 있기를, 그리고 감동으로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조선규 | 칼럼니스트  
조선규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조선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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