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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편을 260] 박순화의 "욕이 절로 나오니더"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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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 절로 나오니더

 

박순화

 

박 여사! 이번에는

그 사람을 꼭 찍으시이소.

상대방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망하니데이.”

철 지난 양복 입은 할배 욕 잡싸도 싸니더

 

박 시인! 이번 문학상에

꼭 한 번 도전해 보시이소

워낙 글이 좋아서 엉간하면 안될씨꾜.”

읽기도 전 뒤로 뺀다니

욕이 절로 나오니더

 

박 선생! 올해에는

시니어 일자리 꼭 해보시이소.”

도서관에 접수 면접까지 보았는데

교직자만 뽑는다카이

욕이 절로 나오니더

 

―『새들의 길』(도서출판 한빛, 2025) 

욕이 절로 나오니더 _ 박순화 시인 [ 만화: 류우강 기자]

  [해설]

 

   사투리 사용 시조의 매력

 

  이 작품이 시조집에 실려 있는 시조라니 놀랍다. 3首로 되어 있는데 초장과 중장이 대화체인 것이 놀랍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동 사투리로 진행되는 것이 놀랍다. 요즘 들어 자주 접하게 되는 엇시조나 사설시조를 보면 이게 과연 시조라고 할 수 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데 「욕이 절로 나오니더」는 시조임에 틀림없다. 시인은 기본적인 음수율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 종장의 첫 어휘가 제1수는 철 지난이고 제2수는 읽기도이고 제3수는 교직자만이라서 셋 중 하나는 원칙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제1수는 이웃 할배가 너무 밉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마음이 기운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하면 되지 왜 내게 와서 상대 당의 후보가 당선되면 이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인가. 이런저런 욕을 그 할배가 먹으니 내심 고소하다. 어떤 이가 시집을 문학상에 내보라고 해서 냈더니 낙선되었는데 뒷얘기를 들어보니 심사위원들이 읽기도 전에 내 시집이 배제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욕이 나올 만하다. 도서관에서 서가를 정리하는 일을 할 사람을 뽑는다고 지인이 전해주기에 접수하고 면접장에까지 갔는데 교직자가 아니라고 안 된다고 하니 욕이 나온다. ‘제기랄이나 빌어먹을보다 더 험한 욕을 했을까?

 

  이 시조는 세 가지 이상의 놀람을 주었지만 세 가지 특징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시인이 겪었을 법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모순된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다. 또한 사투리를 진하게 써 지역적 특성을 강조하였다. 시조의 형식 자체가 고색창연해서 현대의 독자와 유리될 수 있는데 이런 식의 모험을 감행하고 있으니 아주 재미있다. 내용도 형식도 정격이 아니라 파격이어서 현대의 독자들은 더욱 환영할 것이다. 시조답지 않았음을 노린 박순화 시인의 작전은 성공하였다.

 

  [박순화 시인]

 

  경북 예천 출생. 2001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조집 『안동 간고등어』『창밖의 풍경』『취원창 가는 길』 등이 있음. 사람과 환경 문학상, 안동예총공로상, 안동예술봉사대상, 한국내방가사 창작가사상 등 수상. 낙강시조시인협회 회장, 경북독립기념관 해설사, 안동문화관광해설사 역임.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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