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탐방] “삶의 흔적을 빚다”…故 배진호 유작전, 감정과 조형의 마지막 대화

[코리아아트뉴스 이종희 기자 | 서울 서초] 10월 2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서초구 멀버리힐스에 위치한 갤러리앨리에서 열리고 있는 故 배진호 작가의 유작전은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었다. “삶의 흔적을 빚다”라는 주제 아래, 조각가 배진호가 생의 끝자락에서 남긴 조형 언어는 관람객에게 깊은 울림과 질문을 동시에 던졌다.

인간의 얼굴, 감정, 기억을 빚다
배진호 작가는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30여 년간 조각가로 활동해왔
다. 경남 거제 출신인 그는 인간의 얼굴과 신체, 감정을 조형적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해왔다. 그의 조각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감정의 단면을 압축한 형상으로 관람객과 마주했다. 철사, 금속, 나무, 합성수지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그의 작품은 현실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인물상을 구현하며, 삶의 고단함과 억눌린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폭발시켰다.

특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같은 작품은 개인적 침묵을 통해 집단적 기억을 환기시키며, 존재의 무게와 역사적 상흔을 조형적으로 드러낸다. 인물의 주름과 균열은 단순한 노쇠함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자 사회적 증언으로 작용한다.
조각과 회화, 매체를 넘나든 감정의 언어

이번 유작전에서는 조각뿐 아니라 회화적 감각이 돋보이는 평면 작업들도 함께 전시되었다. 굵은 붓질과 원색의 색채, 분절된 형태가 특징인 그의 회화는 조각의 무게감과는 또 다른 감성으로, 작가의 내면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배진호가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예술 언어를 확장해온 예술가였음을 보여준다.

조각과 회화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형상과 물성의 파편적 긴장’이다. 그의 작품은 미학적 실험을 넘어, 인간의 근원적 질문—자아와 존재, 삶과 번민, 침묵과 기억—을 제기한다.
미완의 흔적, 질문을 던지는 전시
이번 유작전에는 생의 말미에 완성하거나 미완으로 남긴 작품들이 함께 공개되었다. 이들 작품은 마치 삶의 무게를 압축해 놓은 듯한 질감과 구조로 관람객을 사로잡았다. 유작전은 대개 완결과 정리의 의미를 내포하지만, 이번 전시는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조각의 마감 선은 작가의 삶이 어디까지였는지를 암시하고, 미완의 흔적은 남겨진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한 관람객은 “작가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없이 전해주는 듯한 작품들”이라며 “작품 속 굴곡진 표정 하나하나에 진심이 느껴진다”고 소감을 전했다.
“작품은 내 손에서 끝나지 않는다”
故 배진호는 생전에 “작품은 내 손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유작전은 그 말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형상들은 이제 관람자의 감정과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조형의 언어로 삶을 이야기한 작가 배진호. 그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말하고 있었다.

전시 정보
- 전시명: 故 배진호 유작전
- 전시기간: 2025년 10월 1일(수) ~ 10월 15일(수)
- 관람시간: 오전 11시 ~ 오후 7시 (일요일 휴관)
- 장소: 멀버리힐스 갤러리 앨리 (서울시 서초구 강남대로 589, 신사역 4번 출구)
- 주최: 배진호 작가 동료 및 후배 작가 일동
- 후원: 갤러리 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