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28】 피고 서생원의 변론 전문
피고 서생원의 변론 전문
김선호
수의대 부설 연구소 특별공판 눈물겹다
뒤주 가득 넘치는 쌀 허기져서 먹었기로 풍문에 들은 얘기 근지러워 까발렸기로 세상에 사형이라니 너무하요 살려주소 나리나 소인이나 줄곧 흰옷 입었으니 우리는 백의민족 한통속이 아니 맞소 신약에 눈이 뒤집혀 숱한 목숨 끊어야겠소 피 냄새 진동하는 실험실 골방에서 집행날짜 헤아리는 생지옥을 모르시오 제발 그 시퍼런 칼날 싹싹 비니 거두시오 도둑 좀 막았다고 살랑살랑 꼬리 쳤다고 바깥 생활 청산하고 안방까지 점령해버린 개 팔자 상팔자라더니 그들 참 부럽구려 아들딸 앉을 자리 떡하니 꿰차고는 엄마 엄마 해 쌓으며 쫄랑쫄랑 따르다가 호강에 복이 겨운지 똥오줌도 지린다요 콜록콜록 기침하고 안색만 달라져도 한걸음에 내달려간 동물병원 대기실이 빅세일 행사장처럼 북새통을 이루잖소
극과 극 치닫는 꼴이 당신들과 다를 게 뭐요!

‘동물들의 영혼들이여! 품성은 각기 다르나 영혼은 같으리라. 아까운 생명이지만 의로운 죽음은 피하지 않음이니 인류 보건 증진에 대한 그 숭고한 희생에 감사하도다…(이하 생략)’ ○○대학교실험동물연구지원센터 정원에 설치된 수혼비(獸魂碑) 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을 너무 원망하지 말고 밝은 세계로 나아가길 바라노라며 끝맺는다.
최근 10년간 실험동물 사용량이 240만 마리에서 450만 마리로 두 배나 증가했다며 생명체학대반대포럼, 동물자유연대 등 동물단체들이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실험과정에서 받는 동물의 고통 수준도 최고등급(E등급) 비율이 44.6%로 유럽연합의 9.2%에 비해 월등하다며 동물복지 문제를 제기했다.
실험에 많이 사용되는 동물은 흰쥐다. 눈알이 붉고 털이 희다. 멜라닌 부족으로 나타나는 붉은 눈은 유전자 발현 관찰이, 흰 털은 오염물질이나 피부조직 관찰이 쉬운 장점 때문이라고 한다. 번식 주기가 빠르고 유전자 조작이 쉬운 점도 한몫한단다. 애초부터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운명이라지만 흰쥐의 삶은 애잔하다. 인류의 욕심에서 비롯된 희생이다.
수의과대학은 연구센터 옆에 동물병원도 운영한다. 대학병원답게 방문객이 줄을 잇는다. 고객의 대부분은 반려견이다. ‘개살구, 개떡, 개꿈, 개고생, 개죽음’처럼 개는 못 미치거나 비하할 때 접두사로 붙는다. ‘쥐새끼 같다’처럼, 쥐 또한 교활하고 얄미울 때 등장한다. 둘 다 천민 취급받았지만, 이제는 대우가 천양지차다. 양극을 달리는 게 꼭 요즘 세태를 닮았다. 팔자소관이라더니! 오호애재라, 서생원들이여!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