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03] 박태일의 "뒤집기"외 3편
뒤집기 외 3편
박태일
아빠 안 계시고
엄마 혼자 안방
뒤집기 뒤집기
아가 뒤집기
엄마는 놀라 사진 찍고
아빠에게 기쁨 날리고
저녁 늦게
할아버지 할머니 전화하셨다
기침을 콜록
감기를 이기려 콜록 애쓰며
다시 뒤집기 위해
아가는 짜증을 낸다
두 번 세 번
뒤집지 못해 용을 쓴단다
뒤집기 뒤집기
아가 뒤집기
할아버지 할머니
웃음보도 자꾸 뒤집힌다
일어서다
아빠에 기대
아빠 다리에 붙어
일어섰다
탁자에 기대
탁자 다리에 붙어
혼자 일어섰다
잠시 앉았다 다시
일어섰다
하늘 무게 밀치고
아가가 일어선 날
해처럼 달처럼
힘차게
걸으리 혼자서도
앞구르기
아기가 구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앞으로
굽히고 굽혀서
아기가 구르기 시작했다
굴러서 웃는 예쁜이
굴러서 누운 이쁜이
아기가 구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앞으로
세상 앞으로
앞구르기 신공
앞구르기 신공
웃고 누운 아기가 일어선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웃는다
앞구르기 앞구르기
세상 처음 굴리기
걸음떼기
한 발 떼고
아빠 품에 철썩
두 발 떼고
엄마 품에 찰싹
할머니 하하
할아버지 허허
아가가 걸음 뗀 날
포항 바다가 방긋
아가가 걸음 뗀 날
지구 바깥 해님이 와와
―『아기 토마토』(산지니, 2025)
![일어서다 _ 박태일 시인 [이미지:류우강 기자]](https://koreaartnews.cdn.presscon.ai/prod/125/images/20251228/1766874197268_566908784.png)
[해설]
아기는 이렇게 자란다
‘손녀와 함께한 할아버지의 일기시’라는 부제를 붙인 이 시집에는 105편이나 되는 동시가 실려 있다. 할아버지가 손녀의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쓴 관찰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박태일 시인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쓴 것이므로 50대 후반에 쓴 것이다. 손녀가 태어나 뒤집기를 시도하고, 일어서고자 애쓰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신기했을까. 구르기를 하더니 어느새 걸음을 뗀다. 그러더니 걸음마를 하고, 혼자 뒤뚱뒤뚱 걷는다. 그때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환호작약(歡呼雀躍)했으리라. 신기해서 환호성을 지르고 대견해서 박수를 쳤을 것이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으리라. 아들네와 부산과 포항으로 떨어져 있었으므로 자주 보진 못했을 터,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를 했지 싶은데, 온 식구가 다 이 아기로 인해 얼마나 기뻐했을지 상상이 된다.
인간은 유한하기에 때가 되면 숨을 거두게 되지만, 살아 있는 동안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 바로 자식이나 손녀 손자가 자라는 것을 보는 게 아니랴. 아기가 고개를 들고, 고개를 돌리고, 몸을 뒤집고, 기어다니고, 구르고, 일어서려고 애를 쓰고, 일어서고, 결국 걸음마를 한다. 말을 배워 나가는 것도 얼마나 신기할까. 하부지, 하머니 하더니 나중에는 할부지, 할무이 하더니 마침내 할아버지, 할머니 한다. 얼마나 귀여울까.
출산율이 조금 늘었다기에 다행이라 생각한다. 지방으로 갈수록 아이들 노는 걸 못 보게 된다. 아기야말로 그 집안의 해님이다. 꽃이다. 이 시집에 나오는 손녀 채은이가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고 하니 이제 곧 중2가 되나 보다. 할아버지가 낸 이 책을 보면 자신이 어떻게 자라났는지 기억은 하나도 안 나겠지만 소상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가 부모와 조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커가기를 바란다.
[박태일 시인]
1954년 경남 합천군 율곡면 문림리 태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미성년의 강」이 당선. 시집으로 『그리운 주막』『가을 악견산』『약쑥 개쑥』『풀나라』『달래는 몽골 말로 바다』『옥비의 달』『연변 나그네 연길 안까이』와 시선집 『용을 낚는 사람들』을 냈다. 연구서로 『한국 근대시의 공간과 장소』『한국 근대문학의 실증과 방법』『한국 지역문학의 논리』『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마산 근대문학의 탄생』『유치환과 이원수의 부왜문학』『지역문학 비평의 이상과 현실』『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한국 지역문학 연구』『북한 지역문학의 근대』 등을 냈다. 김달진문학상·부산시인협회상·이주홍문학상·최계락문학상·편운문학상·시와시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