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50】 권선애의 "왁스의 바른 생활"
왁스의 바른 생활
권선애
이력을 쌓는 동안 머리카락 휘날린다
한번 엉킨 꿈들은 풀어내기 어려워
왁스로 빛나는 머리 단단하게 고정한다
바른 생활 기둥에 나를 묶어 놓으면
겉모습에 갇혀서 진실은 달아나고
반항을 풀어놓을 때 머리는 번뜩인다
앞 못 보는 방 안에서 천 리를 내다보며
얘야 말끝 내리고
주먹은 가슴에 둬라
온몸에 촉을 단 엄마 어둠을 밝혀준다
센 말을 골라 먹어 목소리는 무채색
억양이 꼬이기 전 왁스 한 번 더 바른다
목표는 자유로운 감옥 궁극에 와 닿는다
-『불편에게로』 (2026. 책만드는집)

어느 날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애틋하기도 하지만 도마 위에 수북하게 쌓인 파를 써는 것처럼 끊임없이 매운 일이기도 하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정리된 느낌보다 단정하게 눌려있는 감각이 자라나는 것 같다.삶을 잘 살아보고자 하는 선언이 아니라 잘 살아 보이도록 훈련된 존재의 내면을 마주 보게 한다.이 시에서 ‘바른’은 윤리도 이상도 아니다.그것은 몸에 먼저 새겨진 생활 방식이며 습관이다.
“이력을 쌓는 동안 머리카락 휘날린다” 이력이라는 말이 함축하는 사회적 시간 속에 휘날림은 늘 정리돼야 하는 것이다.엉킨 꿈들은 풀기 어렵고 왁스를 바른 머리는 빛난다.그러나 그 빛은 살아 움직이는 윤기가 아니라 흐트러지지 않도록 굳혀진 표면 같은 광택이다.
바른 생활은 이 시에서 하나의 기둥으로 등장한다.화자는 그 기둥에 스스로를 묶는다.강제처럼 보이지만 그 행위는 자발적이다.진실은 때로 억양을 꼬이게 하고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다.뿐만 아니라 삶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이 시가 보여주는 ‘바른’은 불확실성을 제거한 상태,즉 관리 가능한 삶을 이야기한다.
시 한가운데 등장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이 모든 관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앞을 볼 수 없는 방 안에서 천리를 내다보는 능력은 통찰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다.혼나지 않기 위해,다치지 않기 위해,사랑을 받기 위해 먼저 결과를 예측하는 감각들과 신체의 훈련이다.이 말들은 기억으로 남지 않고 자세로 남는다.
“센 말은 골라 먹어 목소리는 무채색//억양이 꼬이기 전 왁스 한 번 더 바른다//목표는 자유로운 감옥 궁극이 와 닿는다”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바르게 사는 법은 손에 익은 기술이며 그 손은 더 이상 타인의 것이 아니다.통제는 사라졌지만 통제의 결과는 완벽하게 유지된다.마지막에 도달하는 ‘자유로운 감옥’이라는 표현은 이 시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강요가 사라진 자리에 습관이 남고 명령이 사라진 자리에 관리가 남는다.이 시는 저항하지도 않고 울부짖지도 않으며 무너지지도 않는다.잘 길들여진 단정한 얼굴로 우리 앞에 마주 선다.
「왁스의 바른 생활」은 화려한 이미지가 아니라 억제된 표면에 있고,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지속되는 눌림에 있으며,저항의 외침이 아니라 자기 관리의 언어로 포장된 순응에 있다.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단정하여 오히려 잔인함의 미학을 불러온다.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감옥’에서처럼 역설의 아름다움도 보여준다.
이탈리아 중서부 지방 토스카나의 흙은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이런 성질은 부드럽고 잘 부서져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를 심어야 흙이 무너지지 않는다.우리의 바른 생활도 완벽하게 길들여져 가끔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한다.그러나 그 ‘바른’이 토스카나의 흙을 지키는 사이프러스나무처럼 우리를 지탱하는지도 모르겠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기자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