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43] 류제봉의 "전우가 남긴 한마디" 외 1편
전우가 남긴 한마디 외 1편
류제봉
총성 속 흙먼지 사이
숨결이 빠져나가는 순간
너의 눈빛이 내 가슴을 스쳤다
“형~ 살아~”
한마디 그 짧은 말속에
수많은 전우의 이름과
끝없는 밤 흘린 피와 땀이
모두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안고 달렸다
폭풍 같은 총성과 불길 속에서도
너의 목소리는 내 안에서
한 줄기 빛처럼 흔들렸다
돌아보면 넌 이미 없고
바람만이 그 자리를 스쳤지만
그 한마디는 죽음 너머로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었다
오늘도 나는 살아서
너의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전장의 초연 속을 걷는다
야자수 뒤 적과 나
정찰 중 야자수 뒤에서
내 심장을 겨눈 적과 눈이 마주쳤다
피와 흙에 번진 눈빛 속에는
살기보다 두려움이 더 많았다
도망가도 죽고
가만히 있어도 죽는 거리에서
총성이 터졌고 적은 쓰러졌다
이미 총상을 입은 낙오병
나처럼 국가의 부름을 받아
이 땅에 놓인, 그는 젊은 병사였다
―『특명, 살아 돌아오라』(가온, 2026)

[해설]
형〜 살아〜
베트남전은 1964년에 시작되어 1975년에 끝났다. 10여년 전쟁 기간 동안 민간인 포함 베트남인 사망자 수는 미국 추정 100만이고 베트남 추정 300만이다. 미군 사망자는 5만, 한국군 사망자는 5천으로 흔히 추정한다. 전사를 찾아보니 5,099명인데 행방불명자까지 포함된 숫자라고 한다. 종전 이후 고엽제 사망자를 포함하면 몇 명이 될지 알 수 없다.
베트남 참전 경험을 한 권의 시집으로 낸 시인이 있었다. 1965년에 나온 신세훈의 『비에뜨ㆍ남 엽서』가 그것이다. 김종철이 1975년에 낸 시집 『서울의 유서』에는 200행에 달하는 장시 「죽음의 둔주곡」 외에도 참전 경험을 살려서 쓴 여러 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외에도 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1월 28일에 백마부대 수색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류제봉 시인이 시집 『특명, 살아 돌아오라』를 냈다. 「파월특명」에서 「귀국 이후」까지 84편의 시가 모두 베트남전 참전 군인의 회고담이다.
모든 시의 모든 구절이 가슴을 후벼 팠지만 “형〜 살아〜”란 말이 내 가슴에 강펀치를 먹였다. 죽어가는 부하가 “류 하사님! 살아서 귀국하세요!”라고 하지 않았다. 죽기 직전에 내뱉은 말이었다. 형〜 살아〜
류 하사는 그 말을 안고 달렸다고 한다. 폭풍 같은 총성과 불길 속에서도 부하의 목소리는 류 하사의 마음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흔들렸다. 빛이었다. “형〜 살아〜” 그 한마디는 대한민국 백마부대 수색대 육군 류제봉 하사를 살게 한 힘이었다. 그 한마디를 늘 가슴에 품고 전장의 초연 속을 걸어갔던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정찰 중 야자수 뒤에서 류 하사의 심장을 겨눈 적과 만났다. 살아나는 방법은 먼저 방아쇠를 당기는 것뿐이었다. 적의 눈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총성이 터졌고 적은 쓰러졌는데, 다가가 보니 그는 이미 총상을 입은 부상병이었다. 그도 “나처럼 국가의 부름을 받아/ 이 땅에 놓인” “젊은 병사”였던 것이다. 그 젊은이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한국군 5,099명이 무슨 죽을죄를 지었는가.
시집은 “적의 그림자가 솟아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숨을 쏟아 넣듯 방아쇠를 당기고/ 총성은 이 밤 또 다른 심장처럼 뛰기 시작한다”(「쇠와 불의 노래」), “왼편에서 들려온 짧고 날 선 외침/ 전우 한 명이 무너진 자리로/ 시간이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불꽃의 심장」), “누군가의 탄피가 팔꿈치를 스치며 굴러가고/ 뜨거운 연기 냄새가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뒤편 어둠 속에서 적의 그림자들이 움찔거린다”(「잿빛 새벽의 문턱」) 등의 구절을 보니 내가 봤던 영화 <지옥의 묵시록> <디어 헌터> <플래툰> <7월 4일생> 등의 장면들이 뇌리를 스친다. 지금도 지구 저쪽에서는 전쟁 중이다. 20대 초, 중반의 젊은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류제봉 시인]
전주 출생. 백마부대 수색대에서 본부 작전 하사관으로 근무. 경인e뉴스 대표. 계간 《가온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잎이 피지 않는 나무』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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