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24 】강상돈의 "석굴암에서"

석굴암에서
강상돈
끝나지 않았다, 멈출 줄도 몰랐다
자식 향한 기도가 새벽 기운 가를 때
촛불만 애간장 태우며 홀로 고개 숙이고
가부좌 튼 암자도 불경을 읽는 아침
성치 않는 무릎관절 끊어질 듯 아파와도
오로지 너를 위해서 또 하루를 견딘다
염불시간 됐는데 산은 또 침묵한다
그 사이 소낙비가 딸꾹질을 하더니
손 모은 여린 가슴에 소망하나 얹힌다
마음이 간절하면 원하는 것 들어줄까
스님의 독경소리 금봉곡에 스며들고
늦게 온 하늬바람이 법당 문을 열고 있다
《나래시조》 (2024. 가을호)
사랑은 밀려온다.
앞뒤 구분 없이 밀려온다.
봄꽃처럼, 여름 초록처럼, 가을 단풍처럼, 밀려오는 파도처럼. 정신없이 밀려들어서 언어의 옷을 입지 않아도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어느 새벽, 석굴암은 바람보다 먼저 깬다. 그곳은 바람을 쓰다듬고 촛불의 애간장을 쓰다듬는다.
말로 간절함을 표현할 수 없을 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기도일 것이다.
성치 않은 무릎 꿇고 부처 앞에 기도하는 부모가 있다. 자신의 몸이 아픈 것보다 자식이 겪을 세상의 힘듦이 더 아픈 까닭이다. 기도는 말을 초월한 침묵이다. 그 침묵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기보다 그저 무탈하게, 덜 아프게, 덜 힘들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내리사랑에 방향이 있다면 그건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물이 산기슭에서 흘러내리듯, 부모의 사랑은 윗물이 되어 골짜기를 적신다. 그 물은 멈추지 않고 흐르며 되돌아올 길도 생각하지 않는다. 주고 또 줘도 더 주지 못함에 부모는 미안해한다.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오랜 세월 지켜보던 세상의 모든 절은, 누군가의 기도로 깊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도가 있다면 그건 아마 자식을 향한 부모의 투명하고 단단한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의 대답이 늦을지라도 부모의 기도란, 한 생을 건 사랑이다.
오늘도 그 마음이 아흔아홉골에 숨어있는, 금봉곡 석굴암을 오르내리며 단단하고 고요하게 머물 것이다.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