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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디가 익어가는 길 위에서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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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둘레길에서 만난 뽕나무와 사랑의 슬픈 전설

오늘은 오랜만에 송파둘레길과 탄천길을 따라 위례순환둘레길을 걸었다. 초여름의 햇살은 어느새 짙어졌고, 탄천길을 따라 이어진 뽕나무 가지마다 오디가 붉고 검게 익어가고 있었다.

송파둘레길 뽕나무 '오디'

송파구에는 잠실이 있다. 지금은 고층 건물과 도시의 풍경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지만, 옛날 잠실은 이름 그대로 누에를 치던 고장이었다. 뽕잎을 먹고 자란 누에가 비단을 만들던 시절의 흔적이 이곳 지명 속에 남아 있다.

뽕나무 열매 '오디'

6월에 접어들자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하나둘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직 덜 익은 붉은빛 오디와 완전히 익어 검붉어진 오디를 바라보다 보니 몇 년 전 절친한 대표님께서 보내주셨던 오디가 떠올랐다.

 

절친 대표님께서 오디를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몇년전 6월, 그렇게 짧게 남겨두었던 감사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그런데 오디에는 단순히 달고 건강한 열매라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검붉은 빛깔 속에는 아주 오래된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뽕나무 열매 '오디'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피라모스와 티스베라는 젊은 연인의 비극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서로 이웃해 살았지만, 높은 담장과 양가 부모의 반대로 사랑을 이룰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벽 틈 사이로 속삭이며 사랑을 키워갔고, 마침내 어느 날 밤 몰래 도망쳐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들이 만나기로 한 곳은 바빌로니아 니누스 왕릉 곁의 커다란 뽕나무 아래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때까지만 해도 오디는 익으면 하얗게 변하는 열매였다고 한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티스베는 피 묻은 입을 한 사자를 보고 놀라 동굴로 몸을 숨겼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베일이 떨어졌고, 사자는 그 베일을 물어뜯었다. 뒤늦게 도착한 피라모스는 찢겨진 베일에 묻은 피를 보고 사랑하는 티스베가 사자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오해했다.

 

절망한 피라모스는 베일을 끌어안고 자신의 단검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피는 뽕나무 아래 땅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뒤 동굴에서 나온 티스베는 죽어가는 피라모스를 발견하고 모든 비극을 깨달았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자신들의 사랑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 뒤, 피라모스의 단검으로 뒤따라 죽음을 선택했다.

 

티스베는 죽기 전 뽕나무에게 이렇게 빌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피와 사랑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얗던 열매를 검붉게 물들여 달라고. 신들은 그 기도를 들어주었고, 그때부터 오디는 익어가며 붉어지고 마침내 검붉은 빛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이야기는 훗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영향을 준 사랑의 원형으로도 알려져 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속삭인 연인, 가족의 반대, 오해와 죽음, 죽어서야 하나가 된 비극적 결말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서사와도 깊이 닮아 있다.

뽕나무 열매 '오디'

그래서인지 오디의 검붉은 빛은 단순히 잘 익은 열매의 색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의 빛이자 기다림의 빛이며, 오해와 비극을 지나 끝내 기억으로 남은 슬픈 색이다.

 

그러나 오디는 슬픈 전설만을 품고 있는 열매가 아니다. 예로부터 오디는 몸을 보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열매로 알려져 왔다. 『동의보감』에서는 오디가 흰 머리카락을 검게 하고 노화를 늦춘다고 했으며, 『본초강목』에서는 사람의 혼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맑게 한다고 전한다.

 

비타민C가 풍부하고 달콤한 즙을 품은 오디는 피로 회복과 갈증 해소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검붉게 익은 작은 열매 하나에 자연의 생명력과 오래된 이야기, 그리고 사람의 기억이 함께 담겨 있는 셈이다.

뽕나무 열매 '오디'

탄천길을 걷다 만난 오디는 내게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열매이자, 오래전 누에를 치던 잠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흔적이었다. 동시에 몇 년 전 누군가가 보내준 따뜻한 마음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선물이기도 했다.

 

길 위의 오디는 말없이 익어가고 있었다. 붉은 열매는 검게 깊어지고, 그 빛깔은 오래된 사랑의 전설처럼 마음 한편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초여름 송파둘레길에서 만난 오디는 그렇게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사랑도, 기억도, 계절도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익어 돌아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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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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