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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규 칼럼] AI 시대, 잘 쉬는 사람이 끝까지 간다

조선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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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쉬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능력이다. 단순히 일을 멈추는 행위가 아니라, 사고와 판단을 되살리는 생존의 기술이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부터 SNS, 이메일, 뉴스, 각종 AI 기반 알림이 끊임없이 주의를 끌어당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속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구분하는 능력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번아웃’을 공식 질병으로 분류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 10명 중 8명이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기술과 도구를 사용하지만, 정작 업무 시간은 줄지 않고 피로는 누적된다. 인간은 더 빨라졌지만, 동시에 더 지쳐가고 있다.


이 모순의 핵심에는 ‘쉼의 부재’가 있다. 우리는 달리는 법은 배웠지만, 멈추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더 많은 것을 배우려 애쓰지만, 언제 멈춰야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의 핵심 역량은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생각하는 힘이다.

AI는 이미 대부분의 영역에서 인간을 능가하고 있다. 생성형 AI는 초당 수십만 단어를 처리하고, 알파고는 인간이 평생 두는 수천 경기의 경우의 수를 한순간에 계산한다. 데이터 처리, 기억 저장, 다국어 번역 등 정보 중심의 능력에서 인간이 이길 여지는 제한적이다.

 AI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져도, 결국 자신의 리듬을 지키는 사람이 멀리 간다. 잘 쉬는 사람이, 끝까지 간다. [이미지: 류우강 기자]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구글 전 CEO 에릭 슈미트는 AI 시대의 핵심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정보를 찾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물을지를 아는 것. 이 판단력의 전제 조건이 바로 ‘쉼’이다.


신경과학은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메리 헬렌 이모르디노-양 교수 연구팀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 네트워크를 발견했다. 이른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는 우리가 멍하게 있을 때, 산책할 때, 샤워할 때 작동하며, 그때 창의력과 자기 성찰, 문제 해결 능력이 발현된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 중 ‘유레카’를 외치고,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중력 법칙을 떠올린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많은 사람은 쉼을 ‘게으름’이나 ‘비효율’로 오해한다. 하지만 쉼은 생산성과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성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한 내부 연구에 따르면, 연속된 화상회의 사이에 단 10분의 휴식만 추가해도 참가자의 스트레스 수치가 크게 낮아지고, 회의 내용의 이해도와 창의적 아이디어 제시율이 향상된다. 신체와 정신의 회복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과학적 현상이다.


즉, 쉼은 ‘일을 덜 하기 위한 핑계’가 아니라, ‘일을 오래 지속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쉬어야 할까? 단순히 소파 위에서 휴대폰을 보는 것은 진정한 쉼이 아니다. SNS, 영상 플랫폼, 뉴스 피드 이 모든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정보 소비다. 겉보기에 휴식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뇌는 여전히 외부 자극에 시달리고 있다.


진짜 쉼은 의도적인 거리두기다. 외부 입력을 잠시 멈추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상태를 훈련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인이 AI보다 똑똑하게 사는 첫걸음이다.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사유의 공간’이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 바쁘지만, 잠시 멈춰 서면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이 바쁨은 성장인가, 혹은 단순한 소모인가?”
 “내가 쫓는 목표가 정말 나의 것인가?”


스탠퍼드대학교의 빌 버넷과 데이브 에반스 교수는 『디자인 유어 라이프』에서 대부분의 현대인은 잘못된 문제를 열심히 푼다고 지적했다. 열심히 일하지만, 그 일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과 맞닿아 있는지는 성찰하지 않는다. 쉼 없이는 이 질문들을 던질 기회조차 없다.


AI가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무엇이 나에게 의미 있는가를 대신 결정해줄 수는 없다. AI는 진로의 확률과 통계를 분석하지만, 왜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지는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 답은 항상 조용한 쉼 속에서 찾아온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평생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는 교육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루 일정을 비워두면 불안감과 죄책감이 먼저 찾아온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쉼의 근육’이 약하다는 신호일 뿐이다.


따라서 쉼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습관처럼 훈련해야 하는 기술이다. 캘린더에 쉼을 기록하자. 시간이 나면 쉬어야지가 아니라, 화요일 오후 3시~4시는 휴식 시간으로 명시해야 한다. 생산성과 무관한 활동을 시도해보자. 산책, 명상, 그림, 음악, 혹은 아무 이유 없는 멍 때리기 모두 괜찮다.


디지털 거리두기도 실천해보자. 하루 최소 30분은 스마트폰을 멀리 두는 디지털 단식을 시도해보자. 처음엔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놀라운 집중력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디지털 거리두기도 실천해보자. 하루 최소 30분은 스마트폰을 멀리 두는 디지털 단식을 시도해보자. 처음엔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놀라운 집중력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이미지 : 류우강 기자]

레이 달리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 세계적 리더들 모두 일정한 ‘쉼의 루틴’을 실천했다. 그들에게 쉼은 나태함이 아닌, 전략이었다. 레이 달리오는 하루 20분 명상을 40년간 지속했고, 빌 게이츠는 매년 두 차례 생각 주간을 통해 회사의 미래 전략을 구상했다.


AI 시대의 경쟁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의 경쟁이다. 기술은 계속 빠르게 바뀌겠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기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기준을 세우는 힘은 바로 쉼에서 나온다. 지금 일정표를 펼쳐보자. 그 안에 아무 계획도 없는 한 시간이 있는가?


만약 없다면, 그 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일정을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1시간이 사고를 되살리고, 방향을 바로잡는 가장 값진 투자일 수 있다. AI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져도, 결국 자신의 리듬을 지키는 사람이 멀리 간다. 잘 쉬는 사람이, 끝까지 간다.

조선규 | 칼럼니스트  
조선규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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