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44] 안혜초의 "아버지의 나이", "오빠가 사라졌다"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아버지의 나이

 

안혜초

 

남자 58세는

내게 있어선 아버지의 나이

 

아버지가 지상에서

하늘나라로

가버리신 나이

 

그래서 나에게는

아버지의 마지막 나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나이 

아버지의 나이 _안혜초 [이미지:류우강 기자]

오빠가 사라졌다

 

답답한 일이 생기면

종종 하던 그대로

오빠네 전화번호를

누르려다가 슬건히

손길을 거둔다

 

오빠는 이제

이 세상에 없잖아

 

―『푸르름 한 줌』(국제PEN한국본부, 2023)

 

오빠가 사라졌다 _ 안혜초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두 편 시가 시인의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58세 한창때에 돌아가신 것이리라. 몇 년인지는 모르겠지만 58세면 그 무렵 한국 남자 평균 수명에도 못 미친 것임에 틀림없다. 58이라는 숫자는 시인의 뇌리에 크게 자리를 잡아 떠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 연세에 돌아가신 시인의 아버지.

 

  누이동생에게 오빠는 크나큰 의지처였을 것이다. 그랬기에 답답한 일이 생기면 종종 전화를 걸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오빠에게 전화하려다가 얼른 정신을 차린다. “오빠는 이제/ 이 세상에 없잖아오빠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은 막막하고, 삭막하고……. 남편은 혈육이 아니고 자식은 내가 돌봐야 할 존재다. 하소연할 수 있고,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존재인 오빠가 사라지다니. 아빠와 오빠가 사라졌으니 얼마나 상심했을까. 가족만 때가 되면 헤어지랴. 동료도, 선후배도, 벗도 다 헤어진다.

 

  대학에 자리를 잡기 전에 11년 동안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회사가 을지로3가역 근처에 있어서 2호선을 타야 했는데 러시아워 때의 2호선은 이름 그대로 지옥철이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데 코피가 터졌다.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닦을 수도 없었다. 그때 짜증이 나지 않고 희한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모든 사람이 100년 뒤에는 다 죽고 없겠지. 나도 마찬가지고. 이 사람들 모두 출근길일 테고 일터로 가고 있을 거야. 다들 힘들게 살아가고 있고 모두 때가 되면 돌아가시겠지.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역내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하고 넥타이도 풀고 근처 가게에 가서 와이셔츠를 사서 바꿔 입고 출근하였다. 이 경험을 시로 써 『생명에서 물건으로』란 시집에 실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생자필멸(生者必滅)’이란 한자성어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만나면 헤어지게 되어 있고, 산 자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가족도 천년만년 같이 사는 게 아니라 몇십 년 같이 살다가 사별한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표정이 밝아졌다. 두 분의 임종 자체가 큰 교훈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상에 없는 시간이 옴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면 웬만하면 웃으면서 대하게 되었다.

 

  [안혜초 시인]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학과 졸업. 1967년 《현대문학》 3회 추천완료. 다년간 신문기자 역임. 세계여기자 작가협회 한국지부 부회장 역임.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자문위원. 한국현대시협 부이사장, 지도위원. 한국기독교문인협회 부회장, 고문. 이화여대동창문인회 회장, 고문. 시집 『달 속의 뼈』『쓸쓸한 한 줌』『아직도』『그리고 지금』『살아있는 것들에는』 등. 한국기독교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예술상, 영랑문학상, 한국PEN문학상, 미당시맥상 등 수상.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승하시인#안혜초시인#시해설#아버지의나이#오빠가사라졌다#시해설#코리아아트뉴스시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