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05] 김연종의 "삶은 팍팍하고 생은 울컥한다"
삶은 팍팍하고 생은 울컥한다
김연종
삶과 생은 하나로 태어난다
한 끼 식사를 걱정하는 것은 삶이고
하나뿐인 목숨을 보살피는 것은 생이다
주걱의 밥알을 떼어먹는 것은 삶이고
부러진 제비 다리를 묶어주는 것은 생이다
우물에서 숭늉 찾기는 삶이고
우물에 빠진 돼지처럼 허우적거리는 것은 생이다
반려견의 산책에 동행하는 것은 삶이고
반려자를 간호하느라 밤잠을 설치는 것은 생이다
아기 기저귀를 채우는 것은 삶이고
요양보호사의 기저귀케어는 생이다
노인정 화투 무늬는 삶이고
요양원의 색칠 공부는 생이다
톨스토이의 생은 삶이고
도스토옙스키의 삶은 생이다
버킷리스트 작성은 삶이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생이다
분리불안에 시달리는 욕망의 샴쌍둥이
죽음 앞에서
삶과 생은 하나로 모아진다
―『삶의 팍팍하고 생은 울컥한다』(황금알, 2025)

[해설]
삶은 오묘하고 생은 난감하다
이번에 네 번째 시집을 낸 김연종 시인은 직업이 의사다. 2004년에 등단한 지면의 심사위원이 오세영 선생님과 나였다. 등단 무렵의 어설픔과 미숙함을 빨리 떨쳐버리고 좋은 시를 꾸준히 써 발표했는데 이상하게도 문단에 널리고 널린 시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우리 문단의 편견에 혀를 찬다. 전남의대를 나왔고, 거의 평생을 의정부에서 내과의원 개업의로 일했다. 지연, 학연, 문단 인연이 크게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내가 자신있게 뽑아준 시인이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그래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우리말 ‘삶’과 한자어 ‘生’은 하나로 태어났으니 일란성 쌍둥이인가? 시인은 삶과 생이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제목이 시사하는 바를 나는 이렇게 해석해 본다. 삶은 매일 겪는 것이므로 생활이나 일상과 비슷한 뜻이다. 그렇기에 팍팍하다. 생은 긴 시간대이므로 연륜이나 인생과 비슷한 뜻이다. 그렇기에 울컥하게 한다. 내 한 끼 점심의 메뉴를 생각하는 것은 삶이고 환자의 하나뿐인 목숨을 보살피는 것이 생(생업)이다. 흥부가 형님댁 주걱의 밥알을 떼어먹는 것은 삶이고 부러진 제비의 다리를 묶어주는 것은 생이다. 우물에서 숭늉 찾기는 내 어리석은 삶이고 우물에 빠진 돼지처럼 허우적거리며 살아온 것은 내 고단한 생이었다. 내 아기의 기저귀를 채우는 것은 내 젊은 날의 삶이었는데 요양보호사의 기저귀케어는 그의 생(생업)이다.
다른 비유들도 하나같이 의미심장하다. 부유한 귀족의 집에서 태어나 방탕한 젊은 날을 보냈던 톨스토이는 집 나가 떠돌다 시골 역사(驛舍)에서 비명횡사했는데 그의 생은 삶이었다고 한다. 사형장에까지 끌려갔고 시베리아 벌판의 유형지에서 8년을 살았던 도스토옙스키는 늦장가를 잘 가는 바람에 행복한 말년을 보냈는데 그의 삶은 생이었다고 한다. 의사가 직업이기에 “버킷리스트 작성은 삶이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생이다” 같은 구절을 쓸 수 있나 보다. 죽음을 앞두게 되면 우리의 삶과 생은 하나로 모아진다는 말도 가슴을 쿵! 내려앉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팍팍해지지 않은 나날의 삶과 울컥해지지 않는 일생을 가꿔갈 수 있을까? 의사 선생님인 시인이 내게 숙제를 내주신다.
[김연종 시인]
1962년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2004년 《문학과 경계》로 등단하여 시집 『청진기 가라사대』『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극락강역』과 산문집『닥터 K를 위한 변주』『돌팔이 의사의 생존법』을 냈다.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고 2022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지원사업인 우수출판콘텐츠에 선정되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의사시인회 운영위원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