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고통을 지나 삶의 색을 그리다… 최화영 그림에세이 『행복한 빨간 구두』
고통은 때로 삶을 멈춰 세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멈춰 선 자리에서조차 다시 걸어갈 이유를 찾아낸다. 최화영 작가의 그림에세이 『행복한 빨간 구두』는 바로 그 조용하지만 단단한 발걸음의 기록이다.

예기치 않은 사고 이후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겪게 된 최화영 작가는 5년에 걸친 투병의 시간을 견디며,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일상의 작은 행복을 글과 그림으로 길어 올렸다. 단 한 계단을 헛디딘 순간 시작된 아픔은 그의 몸을 바꾸었고, 걸음의 균형마저 달라지게 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상처를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오른쪽과 왼쪽의 높이가 다른 ‘빨간 구두’로 자신의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했고, 그 현실 위에 희망의 색을 덧입혔다.
『행복한 빨간 구두』는 단순한 투병기가 아니다. 이 책은 아픔을 견디는 한 사람의 고백이자, 삶을 끝내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의 기록이다. 절룩이는 걸음 속에서도 “그래도 나아가야겠지요?”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작가의 문장은 담담하지만 오래 남는다. 독자는 그 문장 안에서 비장한 선언보다 더 큰 울림을 만난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러나 무리하게 자신을 다그치지도 않겠다는 인간적인 결심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제목들만 보아도 이 책이 절망의 기록이 아니라, 빛과 바람과 기억과 손의 온기를 붙들어가는 이야기임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책 속에는 아픈 현재만이 아니라 사랑받으며 자란 유년의 시간들이 함께 흐른다. 일곱 남매를 키워낸 아버지의 무거운 손수레, 갓난아기였던 자신을 업어 키운 큰언니의 사랑, 순박한 가족과 함께했던 시절의 풍경은 작가의 그림과 글 속에서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다.
최화영 작가의 그림은 동화처럼 맑고 천진하다.
그러나 그 순수함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삶의 고단함을 통과한 뒤에도 끝내 잃지 않은 마음의 색에 가깝다. 투명하고도 환한 색감, 서툰 듯 정감 있는 선, 그리고 아픔마저 품어 안는 빨간 구두의 상징은 독자에게 설명보다 먼저 감정을 건넨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책이면서 동시에 바라보는 책이고, 감상하는 책이면서도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위로의 오브제가 된다.

특히 ‘빨간 구두’는 이 책의 핵심 상징으로 읽힌다.
그것은 단지 예쁜 사물이 아니라, 다친 몸으로도 계속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의 표상이다. 짝짝이 굽을 가진 구두는 온전하지 않은 몸의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걸어가겠다는 선언이 된다. 아픔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 바로 그 점에서 『행복한 빨간 구두』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최화영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판화 작업을 병행하며 예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어르신들과 함께 판화 수업을 진행하며 그림의 즐거움과 삶의 보람을 나누고 있다. 자신의 상처에 갇히기보다 오히려 타인과 온기를 나누는 방향으로 삶을 확장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예술은 작품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삶 전체로 이어진다.
『행복한 빨간 구두』는 고통을 극복했다는 영웅담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아픈 몸으로도 여전히 웃고, 기억하고, 사랑하고,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진실한 하루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더 깊은 공감을 남긴다. 거창한 위로 대신 조용한 진심으로 다가와, 삶이 힘겨운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도 절룩이더라도 다시 걸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삶의 시련을 통과한 끝에 작가가 건네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지나온 시간 속에도 행복은 분명 존재했고, 오늘의 불완전한 걸음 또한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행복한 빨간 구두』는 그 사실을 가장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증명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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