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33】 염창권의 "중첩"

중첩
염창권
성냥처럼 딱딱해진 그림자를 눕히고서, 언젠가는 꿰뚫고 갈 가슴팍을 응시한다, 위에 뜬 그림자가 겪을 그 나중은 역치易置이다.
《저녁이 빨리 왔다 – 90년대 시조동인 반전 4집》 (2025. 다인숲)
그림자는 빛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우리는 모두 그림자를 가지고 살아간다. 빛을 만나거나, 운명처럼 마주치는 죽음의 순간, 혹은 마음속에 묵직하게 남아있는 흔적들이 모두 그림자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 잊고 싶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일 수도 있다. 유연하게 우리를 따라다니던 그림자는 어느 순간 ‘딱딱해진 그림자’로 우리를 찾아온다.
시인은 그림자를 단순한 무게로만 보지 않는다. 언젠가는 가슴팍을 꿰뚫을 것이라 말한다. 이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피하고 싶고 감추고 싶던 과거나 과오를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필연을 상징한다.
중첩은 같은 것을 포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사건을 겹쳐 새로운 구조가 되는 것을 말한다. 나무의 나이테가 한 겹 한 겹 쌓이면서 나무의 역사가 돼가듯, 인간의 삶도 다층적인 경험이 쌓여 한 사람이 완성된다.
역치(易置)는 삶의 전환점으로 읽힌다. 이는 주체가 새로운 곳으로 옮겨지는 순간, 곧 ‘존재의 변위(變位)’가 일어난다. 쌓이고 겹쳐진 그림자들은 새로운 자리에 놓임으로써 다른 의미를 얻게 된다.
「중첩」은 여백과 겹쳐지는 이미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시의 상징인 딱딱해진 그림자를 허공에 띄워, 의도적으로 낯설게 배치한다. 이러한 의도적인 배치는 다양한 것들을 불러들인다. 몸과 혼의 자리가 바뀌는 죽음의 순간,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모습 또한 역치의 모습과 연결된다. 이 시의 묘미는 ‘중첩’과 ‘역치’라는 철학적 단어를 끌고 와 시적 묘사보다 지층의 모습처럼 사유의 층위(層位)를 쌓아올렸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그림자를 남긴다. 그것은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게 하는 문턱이 될 수 있다. 내 안에 겹겹이 쌓아온 그림자들이여, 새로운 빛을 향해 걸어가 보자.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수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