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52] 혜초의 "파미르고원에서 눈보라를 만나다"
파미르고원에서 눈보라를 만나다
혜초
冷雪牽氷合 차디찬 눈, 얼음까지 끌어모으고
寒風擘地裂 찬바람, 땅 갈라져라 매섭게 분다
巨海凍墁壇 망망대해 얼어붙어 단이 되었고
江河浚崖囓 강물은 제멋대로 벼랑을 갉아먹는다
龍門絶瀑布 용문 지방은 폭포조차 얼어 끊기고
井口盤蛇結 우물 테두리는 도사린 뱀처럼 얼어붙었다
伴火上胲歌 횃불 들고 오르며 부르는 노래
焉能度播密 파미르고원을 어찌 넘어갈 수 있을까
—정수일 역, 『왕오천축국전』(학고재, 2004)

[해설]
더워도 더워도 너무 더워서 팥빙수 같은 한시를 한 편 올려놓는다. 당나라로 유학을 간 학승 혜초는 인도 여행을 스승의 강권으로 하게 된다. 704년생인데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은 719년이었다. 중국에서 만난 스승이 하필이면 중국말을 떠듬떠듬 하는 인도인 금강지였다. 중국 황제의 명을 받들어 인도어 불교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국가사업의 총괄 책임자였다. 스승은 신라에서 온 혜초가 어학에 천재성을 보여서 인도어를 좀 할 줄 알면 인도어 경전 번역자로서는 적임자임을 알아본다. 스승은 혜초를 따로 불러 인도어를 가르치고자 했지만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어 꾀를 냈다. 몇 년에 걸쳐 인도 여행을 하고 오라고. 중국은 그 당시에 인도를 ‘천축국’이라 불렀고 5개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혜초는 스승이 시키는 대로 다섯 개 천축국을 돌아보고 귀국하려다 마음을 바꾼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세상 구경 실컷 하고 가자. 그래서 북으로 발걸음을 옮겨 삼십여 나라를 더 보고 오는데, 가는 곳마다 그 나라의 풍광과 풍습, 정치 상황과 경제 상황, 종교 생활과 의식주 등을 기록했으니 바로 『왕오천축국전』이다.
5편의 한시 중 이 시는 호밀국 편에 나오지만 어느 겨울날 토화라국에서 눈보라를 만나 그 회포를 읊은 것이다. 토화라국에 당도한 스님 일행은 때마침 엄청난 눈보라를 만난 모양이다. 조동일은 이 시에 대해 “그 높고 험난한 파미르고원을 눈보라 헤치며 넘어야 하는 괴로움이 잘 나타나 있다”고 했고, 심경호는 “토화라에 눈이 온 겨울날, 혜초는 파미르고원을 쳐다보면서 구도 행로의 험난함을 되새겼다”고 했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훌륭한 평이지만 구체성, 혹은 사실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
혜초는 어느 겨울날 이국의 풍경을 노래하는데, 짧은 한시임에도 얼마나 추운 겨울이며 얼마나 거센 눈보라인지 짐작이 갈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아니, 과장법을 사용하고 있다. 바다가 얼어붙어 절벽을 만들었다니, 중국인은 원래 과장이 심한데 신라의 젊은이가 이렇게 과장이 심하다니. 강물이 제멋대로 벼랑을 갉아먹는다는 것은 강이 꽝꽝 얼었다는 뜻이다. 용문 지방은 폭포조차 얼어 끊기고 우물 테두리가 도사린 뱀처럼 얼어붙었다니 이는 완전히 현대적인, 감각적인, 세련된 표현이다. 지금은 최악의 엄동설한, 이 밤에 설사 눈보라가 분다고 하더라도 여행 일정상 이들은 오늘 밤 파미르고원을 넘어가야 한다. 길도 안 보이는 캄캄한 밤이니 횃불을 들고 파미르고원을 넘기로 한다. 동료 스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경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하여 쓴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기록문이다. 여행하면서 기록을 하지 않았더라면 혜초라는 이름은 후세인의 뇌리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혜초는 여행을 끝내고 당나라로 돌아와 장안 천복사에서 금강지를 모시고 인도어 경전을 한역했다. 번역사업 도중 금강지가 죽자 그의 중국인 수제자 불공삼장과 함께 계속 번역사업을 했다. 불공도 죽자 혜초는 동료들과 함께 황제가 스승의 장례를 돌보아준 데 대해 감사의 표문(表文)을 올리기도 하고 나라를 위해 불공을 드리는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 후 수년 동안 장안에 있다가 오대산(五臺山)의 건원보리사로 들어가 역경 사업에 마지막 힘을 쏟다 780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고국 신라 땅은 끝내 밟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시를 정말 잘 쓴 시인이었다. “정구반사결(井口盤蛇結)”ㅡ“우물 테두리는 도사린 뱀처럼 얼어붙었다” 같은 표현을 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중국 둔황 석굴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을 프랑스인이 본국으로 밀반출했는데 우리나라가 아무리 돌려달라고 해도 마이동풍이다. 한국한테는 돌려주고는 우리 이집트한테는 왜 안 돌려주냐고 항의하면 할 말이 없으니까 아예 선례를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에 오면 국보가 될 『왕오천축국전』의 귀국일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다방면으로 노력을 계속했으면 한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