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27] 류안의 "달개비 소녀"
달개비 소녀
류안
아침 햇살 참 좋다고
눈인사 건넸더니
손톱만 한 손가방에서
꽃 한 송이 내민 소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
고맙단 말 못 했네

달개비 소녀 – 찰나의 선(善)이 피어나는 시학
류안의 시 「달개비 소녀」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선함과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의 빛을 포착한 서정적 순간이다.
첫 행의 “아침 햇살 참 좋다고 / 눈인사 건넸더니”는 자연과 인간, 주체와 타자의 조우를 선언하는 서두다. ‘햇살’은 생명의 원천이자 세계의 따뜻한 인사이고, 그 빛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화자의 태도는 이미 존재의 개방성을 전제한다. 여기서 시인은 타자를 향한 존재의 환대를 일상 속 인사로 치환하며, ‘말의 온도’를 통해 세계와 교감하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손톱만 한 손가방에서 / 꽃 한 송이 내민 소녀”는 감각적 구체화의 절정이다. ‘손톱만 한’이라는 수식은 세계의 미세한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시적 시선을 상징하고, 그 작은 공간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는 선의 은유로 작동한다. 그것은 아무런 계산도 조건도 없는 순수한 행위이며, 존재가 존재에게 건네는 가장 원초적 언어다.
그러나 마지막 연의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 / 고맙단 말 못 했네”는 감정의 역류로 시를 닫는다. 언어는 벅찬 순간 앞에서 멈추고, 침묵 속에서 진정한 감사가 완성된다. 이는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 앞에서의 응시’와도 통한다. 화자는 소녀의 행위 앞에서 언어 이전의 감정, 즉 윤리적 떨림을 경험한다. 그 떨림은 눈물로 치환되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세상과 타자 앞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반응이다.
「달개비 소녀」는 결국 존재의 선함이 어떻게 시적 순간으로 현현하는가를 보여주는 시다. 달개비처럼 짧고 연약한 만남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꽃 사이를 잇는 따사로운 빛이 있다.
이쯤 되면 시조가 장황하게 길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수작이라 할 것이다.

류안 시인은 사진작가로서의 활동을 통해 사진에 시조를 덧붙이는 독창적인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사물을 바라보는 섬세하고 독특한 시선을 바탕으로 사진을 촬영하며, 그 순간의 인식과 감성을 시조라는 정형시 형식으로 풀어낸다. 시조와 사진이 어우러진 그의 작업은 시각과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상의 풍경 속에서 깊은 서정을 이끌어낸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