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41] 이상규의 "목욕탕에서"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목욕탕에서

 

이상규

 

일주일마다 어김없이

거쳐야 하는 목욕탕에서

온몸이 마비된 아들 때문에

골이 깊게 주름진 어머니 모습

 

말없이

통나무 굴리듯 굴려

거칠고 투박한 손에 이태리 수건 끼워 껍질 벗겨내듯

박박 문지르고

줄기차게 뿜는 물줄기로 뿜으면

시원스레 씻기어 내려가

수북하게 쌓이는 기름때

 

몇 번 하는 동안

팔다리 오므라져 괴로워하며,

조금도 도움 못 주는 나는

내 가슴속에 쌓인 아픔도 씻겨 주세요

땀 흘리시는 당신께 말하고 싶지만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닭똥 같은 눈물만 자꾸자꾸 흘렸다

 

그 모습 쳐다보고

안쓰러워하시는 어머니

그 후로 나는

당신 앞에서 울지 않았다.

 

―방귀희 엮음, 『구상솟대문학상 30주년 기념/인생예보』(연인M&B, 2022)  

그 후로 나는 당신 앞에서 울지 않았다. _ 이상규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목욕이 전쟁인가 고문인가

 

  이상규 시인은 군입대 후 세균에 감염되어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30년 동안 보훈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했다. 흡사 프랑스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경우처럼 눈동자 인식으로 한 자 한 자 시를 빚어 완성해 나갔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욕을 하는데 온몸이 마비된 아들을 씻기는 어머니는 몸살을 앓는다. 몸을 통나무 굴리듯 굴려 가면서 이태리 수건으로 박박 문지른다. 아들은 팔다리가 오므라지고 괴롭지만 살살 해달라고 말도 하지 못한다. 내 가슴속에 쌓인 아픔도 씻겨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말은 할 수 없다. 화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쓰고 계신 어머니를 보자니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른다. 몸이 불편한 아들이 목욕이라는 고통스런 의례를 치르느라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도 거의 울상을 짓고 있자 아들은 결심한다. 앞으로는 절대로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겠노라고.

 

  보통 목욕이나 샤워란 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는데 이들 모자에게는 중노동에 가까운 힘겨운 일이다. 아마도 거의 모든 장애인 집, 장애인 시설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이 힘겨운 목욕 의례가 아닐까. 그래도 근년에는 이동목욕차량이 나와 저소득 가족의 1~3급 중증 재가 장애인, 경제적ㆍ신체적 어려움으로 본인 스스로 목욕을 할 수 없는 저소득 장애인, 각종 노인성 질환으로 장기 와병 중인 무의탁 노인 중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외 판정자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이상규 시인]

 

  2001년에 《문학공간》으로 등단하였다. 2003년에 기적적으로 시집 『휠체어 위에 실은 넋두리』(문예촌)를 발간하였다. 2006년에 구상솟대문학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1963년에 나서 2013년에 작고했으므로 지상에 50년 동안 존재하였다. 20년 동안은 온전한 몸으로, 30년 동안은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승하시인#시해설#코리아아트뉴스#시읽기#목욕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