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의 세상 보기 : 시 ] 숫자 고치기 / 이연순
숫자 고치기
이연순
고장 난 손목시계를 고치러 갔다.
시계수리공은 맡겨놓고 이틀 후에 찾아가라고 했다
다시 가서 물었다
내 시간은 언제부터 고장 났냐고
그는 말했다
나는 시계만 고치지 시간은 못 고친다고 했다
아직도 나의 시간은 수리 중.
이연순 시인
1961년 전남에서 태어나 2008년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14년 [백제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2015년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방통대 고전강독회와 백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광화문 나팔 소리』, 소리숲, 2021

그리스 철학에서는 시간을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눈다. 크로노스(Chronos)는 시계나 달력처럼 우리가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의 흐름 등이고,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은 주관적으로 또는 체험적인 찰나의 순간, 기회 등을 의미한다.
이연순 시인의「숫자 고치기」에서의 시계수리공은 물리적인, 즉 시적 화자가 고장 나서 맡긴 시계, 즉 크로노스의 시간이 흐르는 시계를 수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화자가 4행의 “내 시계는 언제 고장 났냐고” 말한 시간은 자신의 삶이면서 의미인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고장 난 시계는 이틀 뒤면 고쳐진다고 했지만, 화자가 묻는 “아직도 나의 시간은 수리 중”에서 내면의 시간은 누구도 대신 수리해 줄 수 없다는 실존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고장 난 시간’은 타성에 젖거나 방향성을 잃은 시간이고 ‘수리 중인 시간’은 스스로 고장 난 시간임을 직시하고 이를 수리하기 위해 고민하는 상징성을 띤 시간이다.
그렇다. 시곗바늘을 되돌린다고 해서 흘러가 버린 내 삶까지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은 스스로 마지막 행 “나의 시간은 수리 중”으로 아퀴 지으면서 자신만이 해나갈 수 있는 영원한 현재 진행형을 보여주는 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