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음악

[이 한 장의 음반] 직선의 미학, ‘단순무식’과 ‘복잡유식’이 공존하는 프랭크 자파의 세계

최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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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재우 문화예술기획 제이비엠 대표

직선의 미학, ‘단순무식’과 ‘복잡유식’이 공존하는 프랭크 자파의 세계

 

록 음악의 긴 역사에서 가장 기이하고 괴짜 같으면서도, 누구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천재성을 지닌 음악가는 누구일까. 원로 록 연주자들은 물론 젊은 음악가들과 록 음악계 종사자들이 꼽는 인물 가운데 프랭크 자파(Frank Zappa)는 반드시 손에 꼽힐 만한 존재다.

 

후배 음악가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세상을 떠난 뒤 오히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록 음악계의 진정한 전설. 프랭크 자파는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편곡자, 프로듀서였으며, 기존 음반사의 운영 방식이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자 직접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이블까지 만든 인물이다.

프랭크 자파(Frank Zappa) 1982년 앨범Ship Arriving Too Late To Save A Drowning Witch
(물에 빠진 마녀를 구하기엔 너무 늦게 도착한 배)앨범 표지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 로저 프라이스(Roger Price)

오늘 소개하는 음반은 프랭크 자파가 1982년에 발표한 《Ship Arriving Too Late to Save a Drowning Witch》다. 우리말로 옮기면 ‘물에 빠진 마녀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게 도착한 배’라는 의미다. 제목부터 기발하고 황당하며,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앨범 표지 역시 몇 개의 직선과 단순한 도형만으로 긴 제목의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한다. 프랭크 자파의 음악에 존재하는 ‘단순무식’과 ‘복잡유식’의 세계가 이 한 장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상에 없던 록을 ‘발명’한 음악가

 

프랭크 자파는 1940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을 작곡할 만큼 범상치 않은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며, 이후 클럽에서 연주 활동을 이어가며 함께 음악을 만들어갈 연주자들을 찾았다.

 

그는 1966년 그룹 ‘프랭크 자파 앤드 더 마더스 오브 인벤션(Frank Zappa & The Mothers of Invention)’의 이름으로 공식 앨범을 발표했다. ‘발명의 어머니들’이라는 그룹명부터 그의 독특한 사고와 유머 감각을 보여준다. 그는 실제로 그룹 이름처럼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록 음악을 발명해 나갔다.

 

프랭크 자파의 음악은 해가 갈수록 더욱 넓어지고 복잡해졌다. 리듬앤드블루스와 재즈, 두왑, 클래식, 사이키델릭, 아방가르드 등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악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했다. 당시에는 아직 대중적으로 정착하지 않았던 말하듯 쏟아내는 보컬과 랩에 가까운 표현까지 일찍부터 시도했다.

 

그의 앨범에는 적게는 20명, 많게는 30명에 이르는 연주자가 참여하기도 했다. 단순한 록 밴드의 범위를 넘어 하나의 대규모 음악 집단과 같은 작업을 이어간 것이다. 곡의 구조는 복잡했고, 편곡은 치밀했으며, 연주자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기술과 집중력이 요구됐다.

 

반면 노랫말은 거침이 없었다. 정치와 사회를 향한 풍자와 냉소, 해학은 기본이었고 욕설과 은어, 비속어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음악적으로는 지적이고 복잡했지만, 표현 방식은 매우 직접적이고 본능적이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단순무식’과 ‘복잡유식’

이 기묘하게 공존한다.

 

딥 퍼플의 대표곡 ‘Smoke on the Water’와 관련된 일화도 유명하다. 딥 퍼플 멤버들은 음악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프랭크 자파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공연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광경을 목격했고,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자파의 음악뿐 아니라 그의 공연을 둘러싼 사건조차 록 음악사의 한 장면이 된 셈이다.

 

방대한 창작력이 남긴 음악적 유산

 

프랭크 자파가 남긴 작업량은 실로 놀랍다. 1966년 공식 앨범을 발표한 이후 1993년 사망할 때까지 27년 동안 생전에 60장이 넘는 공식 음반을 발표했다. 사후에도 생전의 공연과 미발표 녹음이 계속 발굴되면서 그의 음반 목록은 더욱 늘어났다.

 

거의 매년 여러 장의 음반을 발표한 셈이지만, 그 많은 작업 가운데 일부가 평범하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쉽게 졸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은 찾기 어렵다.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과 연주법, 편곡을 실험했으며, 전작에서 성공한 방식을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는 뛰어난 연주자들을 발굴하는 능력도 지녔다. 오늘날 거장으로 평가받는 연주자들의 젊은 시절 이름이 프랭크 자파의 앨범 크레디트에서 발견될 때가 많다. 그들이 가진 가능성을 일찍 알아보고 자신의 까다롭고 복잡한 음악 속에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1988년 발표한 《Guitar》와 1986년의 《Jazz from Hell》처럼 제목부터 강렬한 작품들도 그의 방대한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스튜디오 작업뿐 아니라 매년 뜨거운 에너지를 쏟아내는 라이브 공연을 이어갔다.

 

그러나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더 이상 창작과 연주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워졌고, 199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의 공로는 공식적으로도 인정받았다. 1995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1997년에는 그래미 평생공로상이 수여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수많은 기타리스트와 연주자가 그의 음악을 다시 연주하며 추모 공연을 열었다. 프랭크 자파라는 한 음악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를 넘어, 그가 록 음악에 남긴 독창적인 유산을 다시 확인하는 무대였다.

 

직선 몇 개로 표현한 한 편의 이야기

 

《Ship Arriving Too Late to Save a Drowning Witch》의 앨범 표지는 로저 프라이스(Roger Price)가 디자인하고 일러스트레이션을 맡았다.

 

흰 바탕 위에는 손으로 그린 듯한 검은 사각형이 놓여 있다. 사각형 아래쪽을 가로지르는 직선은 수면을 나타낸다. 왼쪽에서 수면을 향해 내려오는 크고 비스듬한 선은 늦게 도착한 배의 앞부분을 표현한다. 오른쪽에 떠 있는 작은 삼각형은 물에 빠진 마녀가 쓰고 있던 모자다.

 

마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물 위에는 모자만 남아 있다. 배는 도착하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 몇 개의 선과 삼각형만으로 ‘물에 빠진 마녀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게 도착한 배’라는 긴 제목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사각형 안의 큰 선이 알파벳 ‘Z’를, 작은 삼각형이 ‘A’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둘을 합치면 자파의 이름 앞부분인 ‘ZA’가 된다. 표지 위쪽에 적힌 ‘ZAPPA’의 문자 역시 일부 알파벳을 삼각형과 단순한 선으로 표현해 앨범 전체에 통일감을 부여한다.

 

표지는 얼핏 보면 어린아이가 낙서한 것처럼 단순하다. 그러나 제목과 상황을 이해한 뒤 다시 바라보면, 선 하나와 도형 하나가 모두 계산된 상징임을 알게 된다. 단순한 그림 안에 언어유희와 시각적 암호, 서사가 겹쳐 있다. 이것이 바로 프랭크 자파의 음악과 닮은 점이다.

 

겉으로는 거칠고 즉흥적이며 무작정 내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치밀한 계산과 고도의 음악적 지식이 자리한다. ‘단순무식’하게 직진하는 표현 속에 ‘복잡유식’한 구조가 숨어 있는 것이다. PDF 3쪽에 수록된 앨범 표지에서도 이러한 직선과 도형의 관계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딸 문 자파가 참여한 ‘Valley Girl’

 

이 앨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Valley Girl’이다. 프랭크 자파의 딸 문 자파(Moon Zappa)가 참여해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젊은 여성들의 말투와 유행어를 랩처럼 빠르게 읊어댄다.

 

프랭크 자파는 이 곡에서도 당시 대중문화와 소비문화, 특정 세대의 언어 습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과장하고 비틀어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다. 딸이 쏟아내는 말과 아버지가 만들어낸 음악이 충돌하면서 우스꽝스럽고도 낯선 풍경이 만들어진다.

 

앨범에 수록된 다른 곡들 역시 평범한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레코드의 앞면과 뒷면은 곡이 구분돼 있으면서도 음악이 완전히 끊기지 않고 하나의 긴 흐름처럼 이어지도록 구성됐다. 각각의 곡을 독립적으로 들을 수도 있지만, 한쪽 면 전체를 하나의 연속된 음악 작품처럼 감상할 수도 있다.

 

이 앨범에는 훗날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로 성장한 스티브 바이(Steve Vai)도 참여했다. 프랭크 자파와 스티브 바이는 일렉트릭 기타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기교와 낯선 소리를 쏟아낸다. 빠르고 복잡한 프레이즈, 예상하기 어려운 전개, 날카롭고 뒤틀린 음색이 끊임없이 이어져 듣는 이를 정신없이 몰아붙인다.

 

마치 프랭크 자파가 스티브 바이에게 “네가 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내질러 보라”고 주문한 듯하다. 그러나 자유롭게 폭발하는 것처럼 들리는 기타 연주마저 자파의 치밀한 작곡과 편곡 안에서 기능한다.

 

성악과 록이 충돌하는 파격적인 결말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Teen-age Prostitute’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며, 프랭크 자파 특유의 사회 비판과 냉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록 기타와 밴드의 거친 반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노래는 뜻밖에도 테너와 소프라노 성악으로 불린다. 거리의 비속하고 어두운 현실을 다루는 내용과 고상하고 권위적인 성악의 음색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러한 대비는 단순히 충격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겉으로는 도덕적이고 지적인 태도를 내세우는 권력층과 고위층 인사들이 뒤에서는 성매매와 성적 스캔들에 연루되는 모순과 오만함을 비판하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프랭크 자파는 사회가 감추고 싶어 하는 위선과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 가장 고상하다고 여겨지는 성악과 가장 노골적인 소재를 한 곡 안에 함께 배치했다. 록과 오페라, 풍자와 비속어, 지성과 본능이 한꺼번에 폭발하며 앨범은 파격적으로 끝난다.

 

하고 싶은 대로 직진한 음악

 

프랭크 자파의 음악은 ‘단순무식’하게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방향으로 직진한다. 유행이나 음반사의 요구, 청중이 기대하는 안전한 형식에 맞추기보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소리와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러나 그 자유분방함은 결코 무지하거나 충동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클래식 음악과 재즈, 록, 현대음악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정교한 작곡 능력이 뒷받침돼 있었다. 듣는 순간에는 장난과 소음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복잡한 리듬과 치밀한 구조, 고도의 연주 기술이 숨어 있다.

 

그는 그룹명처럼 새로운 록 음악을 끊임없이 ‘발명’했다. 다른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렸으며, 사회의 금기와 위선을 조롱했고, 뛰어난 연주자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프랭크 자파의 방대한 음반 목록을 바라보면 그의 생애가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 갑작스럽게, 너무 이른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자신보다 훨씬 오래 살았던 많은 음악가보다 더 많은 작품과 더 넓은 음악적 유산을 남겼다.

 

《Ship Arriving Too Late to Save a Drowning Witch》의 표지에는 몇 개의 검은 직선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단순한 선 안에는 늦게 도착한 배와 물에 빠진 마녀, 사라진 존재와 남겨진 모자, 그리고 ‘ZA’라는 자파 자신의 이름까지 숨어 있다.

 

프랭크 자파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단순하고 거칠며 무모하게 내달리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복잡하고 지적인 음악 세계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단순함과 복잡함, 무식함과 유식함, 저속함과 고상함을 동시에 껴안았던 음악가. 그것이 록 역사에서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프랭크 자파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앨범 개요

  • 앨범명: 《Ship Arriving Too Late to Save a Drowning Witch》
  • 아티스트: 프랭크 자파(Frank Zappa)
  • 발표 연도: 1982년
  • 대표곡: ‘Valley Girl’
  • 참여 음악가: 문 자파, 스티브 바이 등
  • 표지 디자인·일러스트레이션: 로저 프라이스(Roger Price)
  • 표지 이미지: 늦게 도착한 배와 물에 빠진 마녀의 모자를 직선과 삼각형으로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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