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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초 글마당] 한숭홍의 "겨울 바다"

KAN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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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
 

 勁草 韓崇弘

 

그들의 만남이 운명이 된 것은

금세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 W. 쉼보르스카, 「첫눈에 반한 사랑」

 

겨울 바다

저 건너 먼 하늘이

불그레해 오고 있다

 

새벽의 바다도

어둠이 숨긴

물결의 파음波音도

겨울 나그네에겐

소연蕭然한 회억의 조각들

 

아침이 열리면

빛 속에서

새날은

산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너와 나를

조각해 세우리라

 

온 세상

잃은 것은 세월이나

겨울 바다는

속세의 어둠을 삼키고

새날의 빛으로

너와 나

또 하나의 이야기를

빛 속의 그림자로

섞고 엮으며 가리라

끝없는 이야기를 

겨울 바다 _ 한숭홍 시인

詩作 노트

 

학창 시절에는 해변에서 태양이 작열하는 모래 벌을 걸으며 뜨겁게 끓어오르는 에너지 같은 것을 인생의 참멋으로 생각했습니다.

 

여행 중에 바다에서 보내는 며칠은 젊음의 광란과 정렬이 분출하는 밤, 그땐 그것을 젊음만이 누릴 수 있는 낭만이라 여겼지요.

 

이제 겨울 나그네가 되어 바닷가를 찾으니, 바다는 쓸쓸히 그저 파도에 밀려오며 포효하더군요. 무엇이 겨울 바다를 그렇게도 아프게 했을까요.

 

삶을 영원한 흐름이라고도 하고 윤회라고도 하지만, 그 흐름은 너와 나를 인연으로 맺어졌던 세월과 공간과 격하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였습니다.

 

「겨울 바다」, 이 시는 너와 나를 새로운 페르소나로 조각해가며, 엮어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韓崇弘 시인의 「겨울 바다」를 읽고  _ 류안 시인
 

「겨울 바다」는 단순히 차갑고 고요한 계절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시에서 바다는 인간의 기억과 회억을 담아내는 상징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파도의 소리는 삶의 고통과 상실을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새벽빛이 열리며 다가오는 새날은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시인은 자연의 질서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비추며, 바다를 삶과 사랑의 은유로 세워 놓는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빛과 어둠의 대비이다. 어둠은 속세의 번뇌와 세월의 상실을 상징하고, 빛은 새날과 희망, 그리고 사랑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겨울 바다가 어둠을 삼키고 빛을 내놓는다는 구절은, 인간이 겪는 고통을 품어내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힘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인의 철학적 시선이다.


또한 시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너와 나’의 관계는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바다와 산, 하늘이 새날을 조각해 세우듯, 인간의 만남과 사랑도 끝없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시인은 자연의 거대한 질서 속에서 결국 인간 관계의 의미를 중심에 놓으며, 운명적 만남의 깊이를 겨울 바다의 이미지로 확장해 보여준다. 이는 서두에 인용된 쉼보르스카의 구절과도 맞닿아 있다. 만남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속에서 운명으로 자리잡는다는 메시지가 시 전체를 관통한다.
 

겨울 바다는 차갑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의미가 숨어 있다. 시인은 바다를 통해 인간의 삶과 사랑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끝없는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독자는 이 시를 읽으며 겨울의 고요 속에서도 희망과 위로를 발견하게 된다.
 

「겨울 바다」는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 인간의 운명과 사랑을 끝없는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품이며,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울림과 위로를 전한다.

KAN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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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숭홍시인#경초시인#겨울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