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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영 파리팡세의 미술칼럼] 칠월 끝단의 기억

정택영 화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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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칠월의 끝단에 이르면 나는 늘 파리 북서쪽 28km쯤에 위치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s-sur-Oise에 묻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 고흐를 생각해보게 된다. 

고흐가 마지막으로 그렸던 '까마귀 나는 들판'을 찾아가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그 황량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고흐가 묻혔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변한 게 없었다.
 

150여년 전 시대를 살다 떠난 고흐의 삶과 지금의 현실을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예술가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나는 절감한다.
 

작업실 크기가 얼마나 넓으냐의 문제보다 작업실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충분한 물감과 캔버스 미술재료를 살 경제적 능력이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을 부양하고 지킬 재정적 여건이 갖춰져 있느냐는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문제 앞에 좌절하는 예술가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고흐가 살아냈던 그 뼈저린 고난의 시절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자신이 처한 고난의 현실에 도리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는 37년 생애 동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약 37번 거처와 도시를 옮겨 다니며 방랑의 삶을 살았다. 그러니까 적어도 1년에 한번은 어디론가 거처을 옮겨야했던 처절한 삶을 살아냈던 셈이다. 그는 지독한 가난, 정신적 발작과 우울증, 사회적 냉대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았다. 

 

방랑초기 네덜란드 시절 (1853~1886)에 태어난 고향 쥔더르트를 시작으로 헤이그, 누넨 등지를 전전하며 화랑 직원, 전도사, 탄광촌 선교사, 화가로서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파리 체류 (1886~1888) 시절 동생 테오와 함께 살며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했으나, 도시 생활에 지치고 좌절했다. 아를과 요양원, 오베르 (1888~1890) 시절 남프랑스 아를로 이주해 그림을 그리다 귀를 자르는 사건 후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생의 마지막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머물다 세상을 떠났다. 

빈세트 반 고흐 생전 판매된 유일한 작품이라는 '붉은 포도밭'(푸시킨 국립미술관 소장)

그 삶의 주요 고난과 극한의 빈곤은 평생 생계비를 동생 테오의 지원에 의존했으며, 물감값조차 없어 동생에게 손을 벌리는 비참한 가난을 겪었다. 생전에 그림이 거의 팔리지 않아 무명으로 살았다. 

빈센트 반 고흐, 침실, 1888(시카고 미술관 소장)

정신적 질병과 발작에 의한 극심한 우울증, 환청, 뇌전증(간질) 및 발작 인해 스스로 귀를 자르는 자해 소동을 벌였고, 정신요양원을 전전하며 내면의 혼란과 싸웠다. 관계의 파탄과 고독으로,  동료 폴 고갱과의 갈등, 실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한 채 '미치광이'로 취급당하는 사회적 냉대와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고흐의 삶의 고난에 대해 무얼 더 말하랴!

최근 AI의 급속한 발전으로 고흐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와 춤을 추는 동영상을 보았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가 1665년경 그린 작품이니 200년의 시대적 갭이 있어 그들이 만날 일은 어불성설이다.

 

길지 않은 생애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으로 살았던 고흐가 이 진주귀걸이 소녀와 춤을 추며 천국에서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 이 글을 남긴다.

 

#정택영노트 2026

필자: 정택영 재불화가

정택영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재불 서양화가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와 재불예술인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1986년 첫 개인전 이후 한국과 프랑스, 미국, 일본, 오스트리아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왔다. ‘생의 예찬’, ‘빛과 생명’, ‘빛의 언어’를 중심으로 생명의 근원과 존재를 드러내는 빛의 의미를 탐구해 왔으며, 파리의 거리와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낸 ‘파리와 파리지앵’ 연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교육과 창작, 칼럼과 국제교류 활동을 통해 한국과 프랑스 미술계를 연결해 온 작가다.

정택영 화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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