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33] 정재규의 "어느 노인의 아침"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어느 노인의 아침

 

정재규

 

이른 아침 폐휴지를 한가득 싣고

수레를 끌고 가는 노인이 있다.

 

차들이 수없이 왕래하는 좁은 도로를

남루한 옷차림으로

힘겨운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버거운 하루를 끌며 가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며 수레를 끌고 가는데

노인 옆에서 숨을 헐떡이며

수레를 함께 끌고 가는 강아지가 있다.

 

힘겨운 노인을 응원하며

수레의 손잡이에 끈을 매단 채

있는 힘을 다해 수레를 끌고 가는 반려견이다.

 

호의호식하는 반려견은 절대 모르는

주인의 벅찬 숨소리를 들으며

강아지는 노인 옆에서

호흡을 맞추며 있는 힘을 다해

앞만 보고 걸음을 재촉하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마음에 선을 긋는다』(지혜, 2021)

어느 노인의 아침 _ 정재규 시인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아마도 정재규 시인이 직접 목격하고 쓴 시가 아닌가 한다. 수레에 폐휴지를 잔뜩 싣고 가는 할아버지를 여러분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그분들이 하루에 버는 돈이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세 끼 밥값 정도일 것이다. 대체로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자신의 키에 육박하는 폐휴지를 싣고 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움을 넘어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노동을 그만두어야 할 연세인 듯한데 저렇게 일을 해야만 하니,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시에는 또 하나의 생명체가 등장하니 할아버지의 반려견 강아지다. 강아지라고 했지만 덩치가 꽤 되는 개일 것이다. 개는 힘에 부쳐 애를 먹고 있는 노인을 도와 수레의 손잡이에 끈을 매단 채 있는 힘을 다해 수레를 같이 끌고 간다. 누가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디카시를 쓴다면 공모전에 입상할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진도 명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간혹 보는데, 어쩜 다들 그렇게 순하게 생겼는지 보기만 해도 감동을 한다. 주인과 함께 산책을 나온 개들도 대체로 착하게 생겼고 행동거지도 순해서 미소를 짓는다. 요크셔테리어와 13년 같이 지내다 작년 17일에 저세상에 보냈다. 유골함과 사진을 거실 귀퉁이에 두고는 매일 보면서 그리워하고 있다. 시인의 눈에 들어와 시의 소재가 된 할아버지와 반려견이 이 겨울에도 같이 일을 하고 있을까? 두 존재는 서로에게 반려(伴侶)가 되었기에 외롭지 않을 것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같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재규 시인]

 

  정재규 시인은 전북 김제에서 출생했다. 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 및 문학교육을 공부했다. 1996년 《문예시대》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부산시교육청 장학사와 장학관, 교동초ㆍ해강초ㆍ무정초등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다. 시집으로 『나비는 장다리꽃을 알지 못한다』가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정재규시인#이승하시인#어느노인의아침#하루에시한편을#코리아아트뉴스시해설#이승하시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