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향기] 길- 박이문
길
박이문
뱃길, 철길, 고속도로, 산길, 들길 이 모든 길들은 그냥 자연 현상이 아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 인간의 언어다. 언어는 인간만의 속성이다. 그러기에 인간만의 세계에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서 인간이 탄생한다.
길은 부름이다. 길이란 언어는 부름을 뜻한다. 언덕 너머 마을이 산길로 나를 부른다. 가로수 그늘진 신작로가 도시로 나를 부른다. 기적 소리가 저녁 하늘을 흔드는 나루터에서, 혹은 시골역에서 나는 이국의 부름을 듣는다. 그래서 길의 부름은 희망이기도 하며, 기다림이기도 하다.
길은 우리의 삶을 부풀게 하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의 부름을 따라가는 나의 발길이 생명력으로 가벼워진다. 황혼에 물들어가는 한 마을의 논길, 버스가 오며 가며 먼지를 피우고 지나가는 신작로, 산언덕을 넘어 내려오는 오솔길은 때로 기다림을 이야기한다. 일터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친정을 찾아오는 딸을,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를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게 하는 길들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길은 희망을 따라 떠나라 하고, 그리움을 간직한 채 돌아오라고 말한다.

희망과 그리움, 떠남과 돌아옴의 길은 어떤 관계를 전제로 한다. 길은 희망이라는 미래와 그리움이라는 과거, 미지의 사람과 정든 사람들, 사물과 인간 간의 관계를 이어준다. 이런 관계에서 미래와 과거, 나와 남, 정착과 개척, 휴식과 움직임, 인간과 자연의 만남의 열매가 영글어간다.
길은 과거의 고착함을 부정하는 동시에, 미래에만 들떠 있음을 경고한다. 길을 떠나 나는 이웃을 만나고, 길을 따라온 이웃이 나를 만난다. 길 끝에 휴식할 공간이 있지만, 다시 길을 찾아 어디론가 움직여야 한다.
과거가 미래로 이어져 역사가 이루어지고, 내가 남들에게로 연결되어, 고독한 실존적 존재로서의 나는 사회라는 광장의 인간으로 재발견된다. 그리고 이런 만남을 통해서 인간은 자연, 더 나아가 우주로 해방된다. 이리하여 길이 만남이라면, 만남은 곧 열림이다.
인간을 자연과 우주로, 나를 남과 사회로 열어주는 길들은, 자연과 우주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여 뜻있는 것으로 하며, 나와 남 사이에 사회의 질서를 세워 진정한 의미의 인간적 세계를 창조한다. 길은 벨트welt,즉 물리현상으로서의 세계가 움벨트Umwelt, 즉 환경으로서의 세계로, 환경으로서의 세계가 레벤스벨트Lewenswelt,즉 생활 세계로, 무의미의 세계가 의미의 세계로 발전하는 역사의 형이상학적 기록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삶의 발자국이다.
구체적 삶은 어떠한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일차원적 현상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꿈과 현실, 희망과 좌절, 휴식과 일, 기쁨과 슬픔, 활기와 피로, 웃음과 눈물, 명상적 순간과 광기의 순간 등으로 무한히 얽혀 얼룩져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삶의 태도를 갖고 있지는 않다. 어떤 이는 더 감성적이고, 어떤 이는 더 이지적이다. 어떤 이가 의지적이라면, 어떤 이는 순응적이다.
산과 들을 일직선으로 뚫은 고속도로에서 인간의 승리감을 느낀다면, 들로 산골짜기로 꼬부라지는 철로에서 삶의 끈기를 맛본다. 봄꽃 필 무렵, 산을 넘은 길은 마치 미소와도 같이 밝다. 한여름 뙤약볕에 소를 몰고 읍내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멀고, 일을 마치고 무거운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농부에게 그가 가야하는 험한 산골짜기 저녁 길은 너무나도 고달픈 언덕길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일을 찾아 가는 젊은이들에게는 그가 밟고 가야 할 신작로가 너무도 거칠고 불안하다. 그리하여 가지가지 길들은 그것대로 삶의 희노애락, 희망과 좌절, 활기와 실의의 각양각색의 삶의 자국을 남긴다.
높은 돌의 층계를 한발 두발 디디고 올라가면서 우리는 삶의 어려움에 새삼 젖는가 하면, 눈 덮인 들길을 헤쳐가면서 우리는 고독한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어떤 길은 꿈이 배어 있고, 어떤 길은 사색적이고, 어떤 길은 황량하고, 어떤 길은 쾌활하다. 길은 인간의 꿈, 생각, 의지, 느낌을 통틀어 함께 반영한다. 길은 삶이 남기는 삶에 대한 인간의 문학적 기술이다. 인간에 의해 씌어진 이 길이라는 언어에 의해서, 자연은 침묵을 깨뜨리고 의미를 가지게 되며 문화라는 꽃을 피우게 된다. 자연의, 아니 우주의 고독이 노래나 시로 바뀐다.
한 사회에 따라, 한 문화에 따라 그리고 한 시대에 따라 길은 애절한 노래일 수도 있고, 서정시가 될 수도 있고 서사시가 될 수도 있다. 로마로 통하는 돌길이나 미국 대륙을 그물처럼 누비고 있는 고속도로에서 크나큰 서사시를 읽을 수 있다면, 미루나무 그늘진 한국의 논길 혹은 산 너머 이웃 마을로 통하는 산길에서 따뜻한 서정시를 들을 수 있다.
큰 도시의 네거리에서 복작거리다가도 잠시나마 버드나무 그늘진 시골 논길을, 냇물이 돌조각 사이로 흐르는 개천 길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명상적이면서도 청청淸淸한 노랫가락 같은 한국의 길에서 우리는 논과 밭, 산과 개천, 구름과 나무,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의 친근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체험하고, 그리하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마음의 자유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옛날 길들에 대한 마음이 끌리고 유혹을 느낀다면, 그것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낭만적 향수나 진보에 대한 거부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남들과의 조화로운 만남 속에서 살아 있는 인간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심향 단상]
고단한 나의 걸음이 언제나 돌아오던......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소리 내 부르는 봄이 되는 네 이름을 크게 부르며
보드라운 니 손을 품에 넣고서 조용필의 '걷고 싶다'에서
* * * * *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지오디God의 노래 '길'에서
길을 나서면 무작정 걷고 싶어진다. 길을 걸으며 마주칠 풍경이 궁금하고, 사람들이 궁금하고, 집들이 궁금하다.
우리는 매일 수없이 길을 걷는다. 어제도 걸었고 오늘도 걸었고 내일도 걸을 것이다.
집 밖을 나서면 어디론가 향하는 발걸음, 쉼 없이 걷고 또 걷는 나날. 우리는 걸으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주변 사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도 세운다.
길은 모양이 다 다르다. 골목길 풍경도 다르고 산길 풍경도 달라서 가는 곳마다 다른 느낌이 싹트고, 그래서 또 그 길을 잊지 못하여 시간이 지나도 문득문득 생각나곤 한다.
목적을 향해 바쁘게 걸어갈 때도 있지만 정처 없이 길을 지나가는 날도 있다. 바쁘게 길을 가다 보면 주변 풍경을 볼 여유는 없고, 한가롭게 길을 걷다 보면 풍경이 시야로 들어와 많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은 주변에서 흙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파트 단지는 자동차의 편의를 위해, 공원에도 인도도 거의 다 아스팔트 콘크리트로 덮여 있어서 땅은 숨쉬기가 어렵다. 나무는 흙을 딛고 살아야 하니 식물과 나무가 자라는 곳에서만 흙을 조금 볼 수 있다. 그래서 흙을 만나려면 산으로 가야 한다. 산에는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촘촘히 한데 어울려 살고 있다. 그래서 흙을 다 덮을 수 없고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일부 아스팔트 콘크리트가 덮여있다.
길의 폭도 가지가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은 좁고, 대로로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치듯 바쁘게 지나간다. 서로를 쳐다보지 않고 무심히 스치는 사람들.
골목길은 보통 구부러져 있어서 모양이 제각각이다. 골목길을 지나갈 때는 빨리 가기 어려워서 나무와 창문과 담 등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집들도 자기만의 얼굴을 갖고 있다. 옛날에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문을 열고 들어가 마당을 지나 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던 단독 주택이 대부분이었는데, 아파트가 많아진 도시에서는 아파트 현관문을 통해 들어가니 공간은 축소되고 벽으로 막혀있어서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길은 걸어가는데 의미가 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 그 길에 무엇이 있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길을 가는 것은 목표점을 향한 과정인데 자동차를 타고 가면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므로, 지나간 길은 증발된 시간처럼 텅 빈 거리가 되어 기억에 남지 않고 도착한 곳만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멀지 않은 거리는 걸어 다니는 것이 운치가 있어 좋다.
우리는 길을 잘 찾아가는 날도 있고 길을 잘못 들어서 그 길을 돌아서 빠져나와 다른 길을 찾기도 하고, 한 번 들어선 길이 자신이 찾던 길일 수도 있지만 그 길이 아닐 때는 다시 가까운 길을 찾아 돌고 돌아 목표지로 가는 때도 많이 있다.
길을 걸어가면서 방향을 계속 수정하며 자신의 목표점을 향해 끊임없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길이 아닐까. 그 길을 가면서 행복도 만나고 어려움에도 처하고 겪었던 슬픔을 이겨내기도 하면서 길을 찾아가는 여정은 계속된다.
우리가 다다르는 길 끝이 희망했던 길의 모습일 수도 있고, 예상했던 길과 다른 길일 수도 있다. 길을 가는 과정에서 만났던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 등 많은 일들은 자신의 삶의 기록이 되어 남게 된다.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길을 걷고 그 길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그대로 새겨져 있다. 그 과정 속에 남겨진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자신을 만들어가고 각인되어 자신의 모습이 완성되리라.
화자는, 길은 희망이라는 미래와 그리움이라는 과거, 미지의 사람과 정든 사람들. 사물과 인간 간의 관계를 이어주고 이런 관계에서 미래와 과거, 나와 남, 정착과 개척, 휴식과 움직임, 인간과 자연의 만남의 열매가 영글어간다고 한다.
길은 인간의 삶의 발자국, 오늘도 걷고 내일도 걸어갈 이 길에 기쁨을 채우고 후회가 없기를 소망한다.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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