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17] 송선영의 "호롱불"
호롱불
송 선 영
한 줌 맑은 가난이나
꼭 보듬고 싶던 것을
센머리, 주름 데불고
타관(他官)에서 돌아올 젠
고목 밑
한 점 불빛이
제 이마를 어룹니다.
풀꽃들 귓속말이나
새겨듣고 지내노니
산허리 솔바람 갈아
쑤꾸꾸기 우는 밤엔
당신의
아득한 음성
가람 되어 흐릅니다.

송선영의 「호롱불」 은 어릴 적 초가에 살았던 날을 호출한다. 한 줌 맑은 가난이나 꼭 보듬고 싶어 나이가 지긋해진 시인이 타관에서 돌아오는 모습은 목가적이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넉넉하고 모두 어우러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문화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 시절만큼 낭만이 있었던 적은 없다.
송선영의 시 「호롱불」은 '고향' '그리움'그리고 '삶의 소박한 빛'을 중심에 두고 있는 서정시다. 맑은 가난은 순수의 절정이다. 가난을 버리려 하지 않고 오히려 꼭 보듬는 모습은 시인만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풀꽃들이 귀속 말을 하면 시인은 그 말을 새겨듣고, 산 허리 솔 바람과 뻐꾸기 울음이 흐를 땐 당신의 아득한 음성이 강물 되어 흐른다. '당신의 아득한 음성'이 강물로 흐르는 확장 적 장치야말로 빼어난 종장이 아닐 수 없다.
'호롱불은' 고향의 기다림과 온기, '풀꽃'과 '바람'은 고향 일상의 평화로움, 밤 '새소리'와 '시골의 정취'는, 변치 않는 사랑과 기억을 담은 귀향의 노래여서 독자의 가슴에 뭉클한 울림을 준다. 그래서 호롱불 어룽이는 그 시절에 살아본 사람은 꼭 한 번 그 시절로 되돌아가 보고 싶은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은 자작 시로 찾아온다.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