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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11] 이혜선의 "아들 심청이"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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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심청이

 

이혜선

 

엄마, 이제 내 얼굴 잘 보이지요?

엄마 눈 고치려고 평생을 바쳐

오늘에야 로돕신*의 구조를 알아냈어요

여섯 살이 예순세 살 되도록 하루도 엄마를 잊어본 적 없어요

 

그날, 가을햇살 쨍하니 내려쬐는 타작마당, 신나는 잔칫날

나락 알갱이에 맞아서 엄마가 얼굴 싸매고 주저앉은 뒤

갖은 약도 효험 없이 단풍잎 같은 제 손을 놓고 떠나가신 뒤

세상의 모든 빛들이 일시에 내게 달려들었죠

(네가 해내야지, 엄마 눈을 뜨게 해야지!)

 

빛과 모양을 뇌에 전해주는 로돕신

찰나에 다섯 가지 다른 구조로 바뀌며

망막신호를 뇌에 전해주는 단백질들

제가 보내는 이 간절한 사랑의 전파가

언제쯤이면 엄마 뇌에 환하게 닿을 수 있나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엄마 아들은

지옥도 마다않으리라 날마다 실험실에서 지새우며

이제야 엄마 눈 띄울 심청이가 됐는데

엄마는 어디 있나요?

 

세상의 모든 엄마,

춥고 깜깜한 동굴 속에서 더듬거리지 말고

제 손을 잡으셔요

환히 웃는 그 모습 모두 보고 싶어요

(이 아들이 세상을 밝히는 심청이가 될게요)

 

*전북대 최희욱 교수가 망막에 맺힌 빛의 신호를 뇌에 전하는 단백질들의 입체구조를 밝혀냈다(2011.3.14. <조선일보>에 연구 성과와 사연이 실렸다).

 

―『시간의 독법』(지성의샘, 2025)  

아들 심청이 _ 이혜선 시인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현대의 심청이

 

  이혜선 시인은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15년 전쯤인 2011314일의 아침이었다. 사고로 눈먼 어머니를 보고 마음이 아팠던 소년이 수많은 사람의 눈을 뜨게 한 미담 기사였다.

 

  여섯 살 소년은 마당에서 벼를 훑던 어머니를 돕고 있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왼쪽 눈에 무언가가 들어가 고통스러워했다. 소년은 어머니가 한쪽 눈을 실명하는 과정을 한 달이나 아프게 지켜봤다. 모두가 어렵던 625 직후 얘기다. 그 소년이 자라 안과 질환의 원인 규명에 관한 세계적 학자가 됐다. 전북대 화학과 최희욱(63) 교수다. 최 교수는 최근 권위 있는 과학저널인 《네이처(Nature)》에 망막에 맺힌 빛의 신호를 뇌에 전하는 단백질들의 입체구조를 밝힌 논문을 실었다. 2008년에도 《네이처》에 두 차례 논문을 실은 바 있다. 최고 수준의 과학저널에 3년 사이 세 차례나 논문을 게재한 이는 한국에선 매우 드물다. “평생을 불편하게 살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한 슬픈 기억이 나를 이쪽 연구로 이끈 것 같아요. 방학 때마다 매달리고, 4년간 휴직까지 해가며 이 분야 연구에 앞선 독일을 오가면서 얻어낸 결실입니다. 제자들이 많이 도왔고 행운도 따랐죠.”

 

  이 기사를 보고 가슴 벅찬 감동을 받은 시인은 최희욱 교수를 시의 화자로 삼아, 즉 시인이 최 교수에 빙의하여 이야기를 끌고 간다. “갖은 약도 효험 없이 (어머니가) 단풍잎 같은 제 손을 놓고 떠나가신 뒤/ 세상의 모든 빛들이 일시에 내게 달려들었죠” “네가 해내야지, 엄마 눈을 뜨게 해야지!”는 어둠과 빛을 연구하게 된 과정을 압축한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연은 신문기사를 더 참고해야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빛과 형상을 전달하는 물질은 안구 속의 로돕신(rhodopsin)’이란 단백질이다. 로돕신은 순식간에 5가지 다른 구조로 바뀌며 망막 신호를 뇌에 전한다. 최 교수는 2008년 마지막 단계의 단백질인 옵신(opsin)’의 구조를 밝힌 데 이어, 이번에 그 전단계인 메타(meta) 로돕신Ⅱ의 구조를 발표했다. 신호전달체계가 망가져 빚어지는 다양한 안과 질환의 선·후천적 원인을 규명하고 예방ㆍ치료할 수 있는 길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수천 개의 소[] 안구에서 수백 개의 단백질 결정을 만든 다음, X-레이로 투시해 입체구조를 분석하는 작업을 거듭해왔다고 했다.

 

  어머니가 그를 눈[] 연구로 이끈 것이다. 그는 세상을 밝힌 현대판 심청이가 된 것이다. 최 교수는 훗날 《네이처》에 3편의 논문을 더 발표하고 정년퇴임 때 같이 연구실 불을 밝힌 후학들을 위해 5천만원을 학교에 기탁한다. 이혜선 시인이 15년 전에 그 신문기사를 보고 시로 쓰지 않았다면 나는 최희욱 교수가 누군지도 몰랐을 것이다. 시인은 자기만의 아픔이나 내면을 고백해도 좋은 시를 쓸 수 있지만 이처럼 이웃의 삶과 꿈을, 상처와 회복을, 괴로움과 그리움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시집 『시간의 독법』에 나오는 「차마고도」「루빈의 꽃병」「프르프록의 밥숟갈 연가」「감전, 수로부인」「칼레의 시민들」「환생, 허난설헌과 프리다 칼로」「다시 쓰는 테스」「곽탁타의 나무심기」「아무르강 성인식」「개울가의 아스타나 묘지」「왕오천축국전의 바람」 등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시의 공간과 시간을 엄청나게 넓힌 광대무변한 시집이다. 이혜선 시인의 시집은 무대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이다.

 

  [이혜선 시인]

 

  경남 함안 출생으로 1981년 월간 《시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와 세종대학교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했다. 시집으로 『흘린 술이 반이다』『神 한 마리』『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이』『바람 한 분 만나시거든』『새소리 택배』『운문호일雲門好日』등이 있다. 저서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문학과 꿈의 변용』『이혜선의 명시 산책』『New Sprouts within You(공저) 등이 있다. 윤동주문학상, 한국현대시인상, 동국문학상, 문학비평가협회상(평론), 한국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동국대 외래교수, 세종대ㆍ대림대ㆍ신구대 강사를 했다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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