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93] 최명숙의 "아홉 친구의 생선구이집"
아홉 친구의 생선구이집
최명숙
친구 아홉이 여행을 떠난 군산의 뒷골목
헐은 생선구이집으로 들어갔다
찾던 집은 노할매가 죽어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 하고
길 가던 아줌마가 골목을 돌아가 보라고 한 집이었다
낮은 지붕 아래 걸린 홍어와 물텀벙이는
흐린 날의 우울을 달아메고 마르면서도 정겨웠다
두서너 개가 삐걱이는 나무의자에 앉아
비닐식탁보 위에 놓인 생선구이와 무조림,
홍어무침과 묵은김치,
시래기된장국을 먹으며 깔깔거렸다
세월 속으로 간 친구 아홉의 여행도 구이집 화로에서
맛있게 익어갔다
역사박물관 앞의 탑 옆에 걸린
초등학교 사진 속 아이들이 자라 단골이었음 직도 하고
동국사에서 따라 나온 올망졸망 돌부처들이
구수한 갈치조림 냄새에 입맛 다시며
슬며시 고개를 디밀어봄 직한 일이었다
—『심검당 살구꽃』(도서출판 도반, 2021)

[해설]
아름다운 우정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잠시 헷갈렸지만 논픽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장면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라 상상의 산물로 간주할 수 없게 한다. 아홉 명 친구가 군산 일대로 여행을 떠났는데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생선구이집에 가서 먹고 떠들며 노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얼마나 정겨웠을까. 더군다나 초등학교 동창이라면.
나도 그 집 삐걱이는 나무의자에 앉아 생선구이, 무조림, 홍어무침, 묵은김치, 시래기된장국을 먹고 싶다. 물론 막걸리도 주문해 벌컥벌컥 마시리라. 그 식당의 주인은 하도 시끄러워서 귀가 멍멍해졌을 것이다. 이들이 낮에 구경 갔던 곳 중에 역사박물관이 있었고 동국사가 있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군산의 근대문화 및 해양문화를 주제로 한 특화박물관으로 1층 해양물류역사관, 2층 독립영웅관, 3층 근대생활관으로 되어 있다. 근처에 군산근대건축관, 군산근대미술관, 진포해양테마공원, 채만식문학관, 금강미래체험관, 군산3.1운동100주년기념관 등이 있어 같이 봐도 좋을 것이다. 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에 의해 창건된 일본식 사찰이다.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져 있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의 많은 창문이 일본식 사찰의 특징을 나타낸다. 그래도 조계종 제24교구인 선운사의 말사로, 대웅전은 2003년 7월 국가지정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어쨌거나 군산의 이곳저곳을 둘러본 일행은 오래된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다. 이들의 우정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이 정겨운 장면을 아주 세련된 필체로 묘사한 이는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이사인 최명숙 시인이다.
[최명숙 시인]
1962년 10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의료환경이 열악한 시골에서 구삭동이 조산과 난산으로 태어났기에 그 과정에서 뇌병변장애를 갖게 되었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25년 근무하였고, 현재는 장애인 후원 모임 ‘보리수 아래’ 대표요, 도서출판 도반의 주간이다.
1992년 《시와 비평》 신인상을 받은 이후 2002년 구상솟대문학상, 2018년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2021년 시집 『심검당 살구꽃』이 한국불교출판협회의 올해의 10대 불서로 선정되었다. 시집 『당신을 사랑함으로 하여』『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들은 절로 떠난다』『져버린 꽃들이 가득했던 적이 있다』『산수유 노란 숲길을 가다』『따뜻한 손을 잡았네』『마음이 마음에게』『인연 밖에서 보다』『심검당 살구꽃』『사람이 사람에게로 가 서면』을 낸 중견시인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