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박노해의 "산닭의 잉태"
산닭의 잉태
박노해
우리 동네 장 씨네는 산닭을 친다
종일 야산에 토종닭을 풀어놓고
야생버섯 따듯 산나물을 캐 담듯
달걀을 주우러 다닌다
탁구공만 한 쪼맨 달걀을
김 나는 밥 위에 탁, 깨어 넣고
간장 반 숟갈을 뿌려 먹으면
입 안 가득 얼마나 고소하고
향긋한 산의 향이 번져오는지
날마다 공짜로 받아먹는 달걀 땜에
종종 달걀 줍는 일을 거드는데
산닭, 제힘으로 참 치열히 먹고산다
온 산을 누비며 열매와 씨앗도 먹고
부엽토를 헤쳐 애벌레와 지렁이도 먹고
골짜기에서 흐르는 맑은 물도 마시고
휘르르 나뭇가지 위로 날아가 앉고
쉴 새 없이 성실하게 몸을 놀린다
그리도 바쁘던 산닭이
어느 순간 느릿느릿해질 때가 있는데
점점 몸가짐이 학을 닮아가고
마침내 봉황처럼 위엄 어린 자태로
나무 아래 흙을 파고들어 앉는 것이다
아 잉태보다 장중한 상태가 있을까
그렇게 알을 낳은 닭은 나 해냈노라고
다시 한 세계를 낳았노라고
당당한 목소리로 하늘과 땅에 고한다
그렇다
모든 쟁점에 의무처럼 한마디 해야 하고
자신이 사건의 출처가 되고자 앞다투며
말할 기회를 엿보느라 늘 초조하고
남의 말들을 들여다보고 따 올리고
옮겨 대느라 정신없는 자는 분명,
아무것도 잉태하지 못한 자임이 틀림없다
잉태의 깊은 과묵
잉태의 깊은 좌정
잠시 후 한 세계를 낳으리라
—『너의 하늘을 보아』(느린걸음, 2022)

[해설]
부모와 자식 사이가 왜?
지난 10일 김포에서 동생이 꾸중하는 형을 살해한 뒤 부모까지 살해하는 참변이 일어났는데 20일 인천에서는 아버지가 사제총기를 만들어 아들을 쏴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기 위해 다년간 엄청난 연구를 한 것인데, 하필이면 아버지 생신을 축하한다고 아들이 마련한 자리에서 아들을 죽이고 달아나다가 남태령에서 검거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휴대전화 게임에 빠진 아들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고, 폭력 가장을 살해한 모자가 함께 구속된 사건도 있었다. 2023년엔 의정부에서 20대 아들이 가구공장 사장인 50대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하곤 증거 인멸을 위해 공장에 불을 질러 시체를 훼손한 사건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하도 많이 일어나니 이 지상이 바로 지옥이라는 생각도 든다.
박노해의 이 시는 야산에 풀어놓고 키우는 산닭이 주인공이다. 화자가 관찰해보니 토종닭은 온 산을 누비며 열매와 씨앗도 먹고 부엽토를 헤쳐 애벌레와 지렁이도 먹고 골짜기에서 흐르는 맑은 물도 마시며 유유자적, 신선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봉황처럼 위엄 어린 자태로 나무 아래 흙을 파고 들어앉는 날이 온다. 새끼를 밴 것이다. 알을 품고 있다가 병아리를 낳고자 만전을 기하는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아 잉태보다 장중한 상태가 있을까”라고. 또한 새끼를 낳는 것은 한 세계를 낳는 것이라고 한다. 수탉과 암탉이 합심하며 암탉이 유정란을 낳으면 암탉은 한동안 그 달걀을 품는다. “잉태의 깊은 과묵/ 잉태의 깊은 좌정”의 시간이 흐른다. 암탉은 잠시 후 한 세계를 낳을 것이고, 그 세계는 작은 우주이다. 그때까지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특히 암탉과 병아리는 합동작전을 편다. 어떤 시점에 이르면 줄탁동시(啐啄同時), 즉 어미 닭이 밖에서 달걀을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달걀을 쪼며 서로 도와 병아리가 세상에 태어난다. 삐악삐악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리인가. 생명 탄생의 위대한 역사가 이뤄진 것이다. 이게 부모-자식의 관계인데 인터넷에 들어가 사건을 들춰보니 부모-자식 간에 살인사건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
시인은 잉태한 자를 높이 받들고, “아무것도 잉태하지 못한 자”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잉태하지 못한 자가 다행이고 잉태한 자가 그만 불행해진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산닭, 제힘으로 참 치열히 먹고산다”고 하는데 인간이 산닭보다 못하니 말이 안 된다.
[박노해 시인]
195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상경해 노동자로 일하며 선린상고(야간)를 다녔다. 1984년 스물일곱 살 때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이 시집은 독재 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며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7년여의 수배 끝에 안기부에 체포, 24일간의 고문 후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1993년 독방에서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을, 1997년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냈다. 1998년 7년 6개월 만에 석방됐다. 이후 민주화운동가로 복권됐으나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카메라를 들고 뛰어들었다. 이후 전 세계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 활동을 이어왔다. 2010년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한 사진을 모아 첫 사진전 <라 광야>전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전을 연 이후 23회 사진전을 가졌다. 12년 만에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펴낸 이후 경구집 『걷는 독서』,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첫 자전수필 『눈물꽃 소년』을 펴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