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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52] 장상옥의 "설날 아침"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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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장상옥

 

설날 아침

귀성객으로 분주한 서울역

그 역사 밖 길거리에

대여섯 명 노숙자

맨바닥에 빙 둘러앉아 있다

장수막걸리에 진로소주 몇 병, 새우깡을 펼쳐 놓고

하회탈 같은 남자에게서 손금을 본다

 

빠진 이가 더 많은 한 노숙자

하회탈 같은 남자가 그의 손금을 보며 뭐라고 그랬는지

갑자기 배를 잡고 뒹굴뒹굴 구르며 웃는다

그 옆의 노숙자도 따라 구르며 웃는다

그 바람에

장수막걸리 넘어지고 새우깡도 흩어진다

 

고향 가는 이들보다 더 기쁜 얼굴로 다시 장수막걸리 벌컥이며

더께 손들을 내밀고 보이지도 않는 손금을 보겠다고 덤벼드는 노숙자들

 

그 사이사이 친구 같은 비둘기들 새우깡을 쪼아대고

그 사이사이 흰 눈발도 하늘에서 그들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밤이 깊지도 않고 새벽이 왔다』(도서출판 상상인, 2025) 

설날 아침_ 장상옥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얼마나 유쾌한지

 

  서울역에 밤이 이슥한 시간에 가면 낮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사람들이 역사 바깥에 삼삼오오 모여 술판을 벌인다. 그런데 그 술판이 대체로 유쾌하다. 노숙자들의 공통점은 한뎃잠을 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여인숙에 장기투숙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숙박비가 워낙 비싸 박스를 요로, 담요나 옷을 이불로 삼아 밤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숙자가 영어로는 homeless people이라 말 그대로 집 없는 사람인데 한자로는 露宿者, 즉 이슬이 맺히는 집 바깥에서 자는 사람이란 뜻이다. 한자가 정감이 있다.

 

  시인은 노숙자들이 노는 장면을 목격한 모양이다. 하회탈 같은 남자가 노숙자의 손바닥을 보고 뭐라고 말했는지 갑자기 배를 잡고 뒹굴뒹굴 구르며 웃는다. 기분을 아주 유쾌하게 한 조크나 덕담을 한 모양이다. 장수막걸리가 아깝게 넘어지고 새우깡도 흩어진다. 그 광경을 보고 다른 노숙자들이 몰려와 손금 봐 달라고 손을 내미니 포복절도할 장면이다. 비둘기가 새우깡을 노리고 몰려든다.

 

   이 시는 목격담이다. 시인은 이들이 노는 장면에 개입하지도 않고 왈가왈부 평하지도 않는다. 백석의 시들이 그랬다. 시인이 어떤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판단하고 평가하면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시를 끌고 갈 수 있다. 사안(事案)과의 거리감이 오히려 시를 살릴 수 있다.

 

  대한민국에 약 12,000명의 노숙자가 있다고 한다. 노숙자가 된 이유는 질병 및 장애 25.6%, 이혼 및 가족 해체 15.3%, 실직 13.9%, 사업 실패 9.9%, 알코올 중독 8.1%, 신용 불량 혹은 파산 5.2%, 임대료 연체로 인한 주거 상실 4.4%라고 한다. 그나저나 노숙자의 원조는 소크라테스인가 디오게네스인가. 톨스토이도 죽을 때의 신세는 노숙자였다.

 

  [장상옥 시인]

 

  한국문화예술대학,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한국방송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자유문학》 신인상 당선. 서울예술대학 예술의 빛상 수상. 풀무문학동인. 『밤이 깊지도 않고 새벽이 왔다』는 첫 시집.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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