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작가 남진영이 전하는 여름날의 유산, “사랑은 마음속에 따뜻한 한 장면을 남기는 것”
[코리아아트뉴스 = 문화부 기자]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을 좇느라 정작 곁에 있는 이의 외로움을 알아채지 못하는 시대. 여기 가만히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신인 작가의 고백이 찾아왔다.
올해 6월, 대한문인협회를 통해 정식 등단하며 문단에 첫발을 내딛은 남진영 수필가가 그 주인공이다. 이제 막 필명을 알리기 시작한 신진 작가이지만, 그녀가 선보인 작품 <할아버지의 참새고기>는 기성 작가 못지않은 촘촘한 서사와 깊은 여운을 담고 있다.
작가는 어리숙하고 눈치 없어 부모의 사랑이 언니에게 기울어져 있다고 느끼던 유년의 결핍을, 말없이 채워주던 할아버지의 낡은 중절모와 투박한 손길로 복원해 낸다.
<할아버지의 참새고기>
- 남진영
경기도 안성, 거기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나오는 작은 마을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나는 어김없이 그리로 갔다. 산에는 나무가 빽빽했고, 개울엔 시원한 물이 흘렀다. 우리는 매일 그 개울에서 고기를 잡고 수영을 했다. 가끔 물뱀이 스르르 지나가면 다들 소리를 지르며 둑으로 기어올랐다. 저녁이면 과수원에서 달큼한 냄새가 마을 전체로 번져오는, 그런 마을이었다.
그해 여름도 나는 그 마을에 있었다.
한낮의 햇볕이 마당을 하얗게 달구었고, 귀가 먹먹하게 매미가 울어대던 오후. 나는 그 마당에서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낙서하고 있었다. 그러다 돼지 먹이를 주고 들어오시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유독 나를 아끼셨다. 위로 언니가 있었지만, 편애는 티가 날 정도였고, 언니는 자주 울어서 질투를 표현했다. 언니는 영악한 아이였다. 어른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하면 귀여움받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나는 달랐다. 어리숙하고, 말대꾸가 많고, 눈치가 없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자주 혼내셨다. 미련곰탱이가 말대꾸도 많다는 이유였다. 나는 매번 억울해했고, 자주 울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 사랑의 무게가 언니 쪽으로 조금씩 더 기울어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걸 아셨던 것 같다.
말 한마디를 하신 적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따뜻함은 늘 내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 있었다. 까슬한 턱수염을 내 볼에 비벼오실 때, 나는 그냥 그게 좋았다. 매일 밤, 할아버지는 구판장에 들러 과자를 사 오셨다. 낡은 중절모 안에 몰래 숨겨두시고는, 우리가 들춰보다 놀라는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할아버지의 중절모 안에는 늘 뭔가가 있었다.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몫이 있다면, 나는 그게 그 모자 안에 있었다고 믿었다.
그날도 혼자 시무룩하게 놀고 있는 나를 발견한 할아버지가 뭔가를 만들기 시작하셨다. 나는 궁금해서 졸졸 따라다녔다.
할아버지는 소쿠리에 실을 꿰셨다. 그리고 마당 한가운데 쌀을 흩어놓고는 그 위에 소쿠리를 거꾸로 엎어두셨다. 실 한쪽 끝은 멀리 툇마루까지 이어 놓았다. 할아버지는 그 실을 손에 쥐고 툇마루에 조용히 앉으셨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뭐예요?"
"쉿"

할아버지는 눈을 찡끗하셨다. 나는 웃으며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참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쌀을 발견하고는 바로 쪼아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손에 쥔 실을 놓으셨다. 소쿠리가 엎어지며 참새를 가뒀다. 안에서 파닥파닥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는 성큼성큼 걸어가 소쿠리를 살짝 들어 올리시더니, 참새를 두 손으로 감싸 꺼내셨다. 그리고 참새 다리에 실을 묶어 날리셨다.
참새는 힘차게 날개짓했지만, 다리에 묶인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파닥거렸다.
할아버지가 그 실을 내 손에 쥐여주셨다.
"귀엽지? 참새랑 놀아."
나는 참새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한 채, 손끝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는 실의 감촉에 감탄했다. 실로 이어진 참새가 하늘을 빙글빙글 도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그 실을 잡고 마당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반나절이 금세 흘렀다.
어느 순간 참새가 맥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날개를 버둥거리던 것도 멈췄다. 나는 그제야 마음이 아렸다. 죄책감이 올라왔다. 나는 실을 팽개치고 방으로 도망쳤다. 무릎에 머리를 묻고 한동안 시무룩하다가 저녁이 되자,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렸다.
마실 나가셨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참새는?"
"죽었어요."
시무룩하게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죽은 참새를 들어 할머니가 저녁 불을 지피던 아궁이에 툭 던져 넣으셨다.
"앗! 왜? 왜요?!"
할아버지는 말없이 빙긋 웃으셨다.
"참새고기 먹어야지."
기가 막혔다. 죽인 것도 마음이 아픈데, 먹자고?
"난 안 먹을래요. 절대로, 절대로 안 먹을 거예요."
나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조금 뒤, 할아버지가 참새고기를 들고 오셨다.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때 뒤에서 언니 목소리가 들렸다.
"우와! 할아버지, 너무 맛있어요. 아, 한 입 더."
감탄사와 함께 너무나 맛있게 먹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언니가 입을 쩝쩝거리며 약을 올리듯 눈을 맞추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맛있어. 그 순간,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이 불쑥 내 입술에 닿았다. 무언가 입안으로 쑥 들어왔다. 참새고기였다.
뱉으려고 입을 벌렸다. 그런데 혀 위에 닿은 그 감촉이 뜻밖에도 야들야들하고, 고소하고, 말할 수 없이 부드러웠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슬프지만 맛있는, 설명할 길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묘한 감정이 들었지만 고기는 얼마 없었고 언니가 날름날름 받아먹고 있었다.
"할아버지! 나도! 나도, 아~"

나는 어느새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으시며 얼마 안 되는 참새고기를 우리 입속에 번갈아 넣어주셨다. 소고기처럼 야들하면서도 고소하고, 닭고기처럼 담백한 그 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후로 나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학교에서 병아리를 사 올 때가 종종 있었다. 참새보다 두 배는 컸지만, 생명력은 오히려 약해서, 사 온 지 하루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은 병아리가 죽으면 슬퍼하며 뒷산에 묻어주었다. 옆에서 제사까지 지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죽은 병아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어떤 맛일까.'
물론 입 밖으로 낸 적은 없다. 친구들이 눈물을 훔치는 옆에서,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우습고 이상했다. 그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끝에서 입안으로 들어오던 그 야들야들하고 고소한 맛. 한 번 알아버린 맛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그 맛보다 더 선명해지는 것이 있었다.
쨍하게 맑았던 여름 하늘. 마당 한가운데 엎어진 소쿠리. 툇마루에서 실을 쥐고 눈을 찡긋하시던 할아버지의 눈빛. 말 한마디 없이 내가 조금 밀리고 있다는 걸 알아채시고, 그 빈자리를 중절모 안 과자로, 까슬한 턱수염으로, 참새고기로 채워 주시던 그 마음.
삶이 팍팍해질수록 그 장면들이 불쑥 찾아왔다. 아무 이유 없이 그 여름 그 마당의 냄새로.
아들 둘을 키우면서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을 때, 나는 종종 멈칫한다.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 더 대단한 것을 찾으려고 할 때마다 할아버지가 나를 행복하게 하셨던 것을 떠올린다. 나뭇가지 하나, 낡은 모자 하나, 마당의 쌀 한 줌을.
어쩌면 사랑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거창하지 않은 것. 아이가 지금 외롭다는 걸 알아채는 눈, 말없이 옆에 앉아 실을 쥐여주는 손.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 장면을 남겨주는 것으로.
그런 사랑은 오래 남는다.
할아버지가 내게 그러셨듯이.


남진영 (수필가)
2026년 6월 대한문인협회 수필 부문 등단.
일상의 사소한 풍경 속에서 사랑과 삶의 본질을 길어 올리는 글을 쓰고 있다.
[기자 클로징]
남진영 수필가의 <할아버지의 참새고기>는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에도 입안에 맴도는 고소한 기억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작가는 두 아들을 키우는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은 사랑의 정의를 나직이 고백한다. 거창한 물질이 아니라 "아이가 지금 외롭다는 걸 알아채는 눈, 말없이 옆에 앉아 실을 쥐여주는 손"이 바로 사랑이라고.
그녀의 수필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화려한 수식어 대신 진솔하고 담백한 문체로 삶의 결들을 촘촘히 받아 적으며,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을 정성껏 돌아보게 만든다.
인생의 메마른 고비마다 불쑥 찾아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어쩌면 어릴 적 누군가 우리 마음에 남겨준 따뜻한 풍경 한 자락일지도 모른다. 남진영 작가가 선물한 이 여름날의 따스한 장면이,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품격 있는 울림으로 닿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