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 향기] 운명처럼 -김영희

글자를 엮어 글을 짓는다. 씨 줄과 날 줄을 이리 꿰었다 저리 꿰었다가, 글자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문장을 엮어나간다. 글자에 어떤 색을 칠할까, 어떤 모양의 옷을 지어 입힐까 매 순간 고민한다. 내가 만드는 문장은 나의 옷을 입고 멀리 훨훨 날아간다. 운명처럼 내게 찾아온 글 세계, 신비롭다.
내가 쓰는 문장들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뜻을 품어서 읽는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길.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나의 생각이 잘 전달될 수 있기를. 신중히 단어를 고르고 기억에 남을 이야기를 엮어서 공감을 줄 수 있기를. 내용이 조금 무거워도 밝은 빛을 품으면 좋겠고, 진실하지만 그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픈 내용이어도 그 속에 희망의 씨앗이 움트면 좋겠고, 얕지 않은 생각을 쉬운 단어로 풀어서 누구든 이해하기 쉽게 쓰면 좋겠고, 미움은 가능한 한 가려내 그 미움을 초월하는 마음으로 쓰면 좋겠고, 내 글의 어느 모퉁이에 나의 사랑하는 마음이 깃들어서 그 사랑이 온전히 전해지면 좋겠고, 마음으로 새롭게 보고 다르게 생각해보는 자세로 쓰면 좋겠고, 나의 생각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더라도 그 다름을 이해해주면 좋겠고... 탁 한 것을 가라앉혀 맑은 것을 내보이고 싶다. 글에 대한 나의 희망 사항은 끝이 없다.
학창 시절, 미처 소화되지 않은 글 속에서 헤매던 때가 있었다. 내 머릿속엔 늘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어렵기만 했던 책들, 그래도 그 책들이 좋았다. 책을 읽으면 가슴이 뛰고 무언가 꿈을 꾸는 것 같은 설렘을 느꼈다. 책은 언제고 나를 망망대해로 불러내 어디든 마음대로 가보라고 이끌어주었다.
치열했던 내 삶이 생기를 잃고 메말라 갈 무렵, 내게 찾아온 소중한 기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곁에 바짝 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의 계시' 같았다.
하루의 시계가 바쁘게 돌아가던 시절, 폭풍이 휘몰아치는 삶 속에서 잠시 서점과 멀어진 내 발걸음을 다시 책과의 동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운명처럼 내게 오신 그분. 그분은 내게 책을 자주 갖다 주셨다. 새 책이 나왔다며, 좋은 글이 실렸다며 내게 주시던 많은 책들을 감사히 받았다. 그 감사함에 보답하고자 더디지만 틈틈이 책을 펴고 글을 읽었다.
관여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책을 사랑하는 나의 세포들이 하나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얼마큼 책을 읽다 보니 나의 책 읽기는 재미가 붙어 무언가를 쓰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 많은 책 속에 있던 좋은 글귀들이 나의 자양분이 되어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글쓰기의 걸음마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의 손을 잡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글 속으로 한 발 두 발 내딛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를 조용히 기다려주시고 잠재 되어 있는 문학적 재능을 꺼내보라고 격려해주셨다. 그렇게 시작된 문학의 길. 아직 많이 부족한,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나의 특기인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이 길을 잘 걸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내 글이 처음 수필 잡지에 모습을 내민 신인상 수상작이 되고, 처음으로 '이 달의 문제작'으로 선정되었던 그 순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가슴 뛰는 행복감에 빠지게 했다. 어설픈 나의 글이 평론이라는 또 다른 색으로 곱게 단장을 하고 멋지게 살아나, 꽃이 피고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글이 두 번째 선정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길을 잃고 헤매거나 옆길로 빠지지 않고 글 길을 잘 찾아가고 있나 보다'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찾아 헤매었을까.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온 것 같은, 본래 나의 자리였을까. 일찍 글 쓰는 꿈을 꾸었다면 좋았겠지만, 먼 길을 돌아와 이제라도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글을 쓰면서 지나간 일들이 글로 인해 마음이 정화되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다시 새롭게 바라보게도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내 삶의 고민도 진지해진다. 손때 묻은 것은 닦아내고 구부러진 것은 잘 다듬어 모양을 잡아본다. 어제보다 더 기쁜 오늘을 살기 위해, 머지않은 날에 한 송이 꽃이라도 피워볼 수 있기를 고대하며 그날을 향해 힘차게 나서본다.
나를 돌아보며 과거의 나에게 칭찬과 격려와 위로도 잊지 않는다. 잘 다져진 땅이 단단하고 평평해지듯이 꾸준한 노력이 언젠가 빛을 발하리라고 믿는다. 오늘보다 새로운 내일의 소망을 담아 글자에 싹을 틔우고 글 꽃을 피워본다. 글쓰기는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든다. 나의 부족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글의 내용과 비유, 표현들에 대해 끝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내 글에 대한 부끄러움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란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나무에 맺힌 꽃봉오리. 비바람 맞으며 고난을 이겨낸 후 단단한 꽃망울을 터뜨리듯이, 언젠가 나의 글에서도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꽃이 피어, 맑은 난 향 같은 은은한 글 향이 피어나기를 바라본다.
운명처럼 내게 온 글 세계, 모두 감사한 일이다.

[수필 읽기]
글을 쓰면서 지나간 일들이 영화 장면처럼 스치듯 떠오른다. 그 경험과 느낌들을 종이 위에 진실하게 옮겨보려고 노력한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써 놓은 글을 읽고 또 읽는다. 수많은 퇴고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어보면 잡초 같은 글자들이 눈에 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단어를 골라내고 다시 적절한 어휘를 고르느라 애를 쓰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과 위안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행복이겠다.
끝없는 책 읽기와 글쓰기는 내 삶을 완성해가는 과정이고, 나의 글은 나를 보여주는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익지 않은 감이 떫은 맛이 강하듯 내 안의 아직 미완성된 떫음이 성숙의 단계를 지나 완숙 되기까지 진실하고 빛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지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리라 다짐한다.
김영희 수필가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래피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 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당선 - 공저 < 내 인생의 어부바>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 공저 <불의 시詩 님의 침묵>
한국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수상 - 공저 <김동리 각문刻文>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작가회의회원